음악 도시, 잘츠부르크

2019년 11월 독일 여행기

by 레알

계획 변경의 묘미


잘츠부르크행은 할슈타트를 가기 위해서 선택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지쳐가는 여행 후반이라 할슈타트는 상상으로 끝났고, 단기 여행자의 욕심이라는 걸 증명했다.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 걸리는 잘츠부르크에서 2박 3일을 보낸 건 할슈타트를 가기 위해서였지만, 할슈타트를 포기하면서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무수한 작은 선택 속에서 포기하는 선택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한 사람의 삶은 선택의 집합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포기한 것들의 집합이 한 개인의 삶을 꾸리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첫날은 가열차게 잘츠부르크 시내를 헤매고 다녔고, 다음 날에는 잘츠부크르에서 할슈타트 대신 뮌헨으로 낮 기차를 타고 왔다. 원래 계획은 저녁 기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몸이 지쳐있어서 낮 기차가 주는 안온함에 홀딱 반했다. 기차는 붐비지 않았고 같은 시간이 걸리는데도 더 느긋한 거 같았다. 무엇보다 전날 잔뜩 흐렸던 날씨는 화창하게 개었다. 잘츠부르크 시내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건 바로 기차창 밖 풍경이다. 푸른 나무와 잔디에 서리인지 눈인지 하얗게 앉아있는데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같았다. 보통 눈이나 서리는 잎도 다 떨어진 나목, 푸른 잔디가 말라서 마른 볏 색일 때 볼 수 있는 게, 내 상식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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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자락의 만년설이 멀리 보이기도 하고, 계절이 이 지역에서만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풍경이 펼쳐져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 없이 드넓은 벌판에 엄청나게 끌리는 편이지만 낮 기차를 타서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차선 책을 선택했지만 차선 속에는 예상치 못한 것이 녹아있었다.


알프스 자락을 볼 수 있는 호엔잘츠부르크 성


잘츠부르크에서 첫날 아침에 일어나서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서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짙은 회색 하늘 아래서도 잘츠부르크는 새초롬하게 빛났다. 잘츠부르크는 뭔지 모르게 시크하고 도도해 보였다. 잘 정돈되어서 그런가...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역사 지구여서 이 골목 저 골목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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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엔잘츠부르크 성 앞뜰(?)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기지개를 켰다. 독일어 자장 아래 놓인 도시들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 번 겪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는 모차르트를 만나러 갔다.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이면서 음악 도시이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이 있고, 모차르트가 살았던 집이 있다. 모차르트의 생가는 기억 속에 생가와는 많이 다르게 레노베이션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모차르트의 한때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생가는 좁은 곳이고, 나중에 이사했던 집은 꽤 널찍했다. 어린 천재 아들을 앵벌이 시킨 거 아닐까, 하는 의혹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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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집. 화장실로 이르는 길이었던 거 같은데 곳곳에 이런 경쾌함이 배어 있다.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인 미라벨 정원도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데이 투어도 있을 정도로 영화 속 배경지들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문화에 대한 해석과 이해, 나아가 애정을 마케팅하는 방식에 놀라곤 한다. 영화 한 편이 어떻게 도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마케팅사를 읽을 수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영화적으로 봤을 때 뛰어난 영화는 아니지만 예술성과 대중성은 별개일 수 있다. '도레미 송'은 누구에게나 귀에 익어서 친숙하다. 친숙함은 낯선 도시에 갔을 때, 힘을 발휘한다. 잘츠부르크에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여행객으로 넘치는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오스트리아 소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쓴 소설 <소멸>을 속에서 모차르트 때문에 나라가 일 년 내내 시끄럽다는 불평을 한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가진 자의 여유로 보여서 그 불평마저 부러웠다.


어떤 테마가 있는 장소는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따라서 다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을 따라다니게 된다. 미라벨 정원은 말 그대로 정원이 더 유명하다. 미라벨 궁전인데 내부는 많이 훼손되었고, 내가 갔을 때는 마침 지역 주민들이 플리 마켓을 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에 들어가서 알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입장료도 없고, 아무 제제도 없어서 신기해하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플리 마켓을 열고 있었고, 내게도 참여하라는 제스처를 보여서 웃으면서 궁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이런 공간을 볼 때마다 역사 깊은 건물이 그저 관람용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서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거의 일주일 내내 모차르트를 비롯한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왜 이 콘서트를 볼 생각을 안 했을까. 피곤해서라고 변명을 해 두자. 아무튼 미라벨 궁의 정원은 푸른 잔디가 있고, 계절을 드러내는 멋진 나무들이 어우러져 그림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알아온 풍경처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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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호엔잘츠부르크 성과 마주 보고 있는 뫼히산 현대미술관으로 갔다. 호엔잘츠부르크에서는 잘츠부르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뫼히산 현대미술관에서는 호엔 잘츠부르크 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맵의 안내로 40분간 하이킹을 했다. 대로에서 엘리베이터로 접근하는 길이 있는데 구글맵 도보 코스는 인적이 드문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길로 안내를 했다. 이렇게 뒷길로 오르면 제임스 터렐이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 횡재를 했다. 규모가 작지만 볕 좋은 여름날 하이킹으로 올라와 터렐이 만들어 놓은 곳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지는 시간은 상상만으로도 근사할 것 같다.


미술관 밖에서 보는 풍경들로 잘츠부르크에게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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