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뮌헨은 특징이 없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도시이다. 맥주 축제가 아니면 가볼 가치가 없는 것처럼 회자되기도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맥주 페스티벌이 열리지 않는 시기에도 많은 다양한 맥주 펍들은 그 자리에서 관광객을 유혹한다. 또 바이에른 지방을 여행하기 위한 거점 도시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현지 투어를 여행사가 많다. 요즘 대도시는 전지구화로 서로 닮아가고 있어서 비슷한데 뮌헨이 이 편견을 도시이기도 하다. 뮌헨은 두 얼굴을 지닌 도시이다. 중앙역 근처에는 거리 풍경은 독일 특유의 실용성과 건조한 분위기가 지배한다. 반면에 구시가에 가까이 갈수록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의 면모를 보게 된다.
구시가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
중앙역 근처의 독일스러운 거리 풍경
크리스마스 마켓
뮌헨에 머물렀던 11월 말에 마침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대해 모른 채 갔는데 마켓의 고유한 바이브에 회색빛 겨울 하늘조차 달콤하다. 마켓에는 쿠키부터 처음보는 여러 가지 먹거리로 넘친다. 한국 축제장의 꽃은 푸드트럭처럼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흥청거리는 분위기이다. 마켓 스톨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활기가 겨울이 뿜어내는 냉기를 물리친다.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나가면 마켓 냄새가 좋아서 킁킁거렸다. 나에게 마켓의 꽃은 '글뤼바인gluehwine'이다. 하루를 준비하는 스톨 주인장들은 글뤼바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영어로는 뮬드와인mulled wine이다. 레드 와인에 향신료를 넣고 끓여서 뜨겁게 마시는 와인을 아침부터 홀짝이며 걸으면, 여행자로서의 보람이 세포에 촘촘하게 각인된다. 세상 부러운 거 없는 내가 주인공인 순간이다. 게다가 이 와인은 그 도시만의 시그니처 컵에 담아서 판다.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마켓 컵을 제작해서 머그잔 수집하는 깨알 재미도 있다. 여행의 추억은 자잘한 기념품에 방울방울 담기기 마련이다. 방문했던 곳에 대한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몸부림으로 막상 쓸 일도 없는 자질구레한 기념품을 사 와서 어딘가에 처박아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머그컵은 집에 와서 열일 중이다. 커피도 마시고 물도 마신다. 가끔 여행 기분을 내려고 스위트 와인을 따라서 홀짝이기도 한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갈 기회가 있다면 컵은 꼭 사세요, 두 개, 세 개 사세요.
렌바흐하우스 시립미술관
뮌헨에는 근사한 시립미술관이 있다. 중앙역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슬슬 산책 삼아 걸어갔다. 이제 뮌헨을 떠올리면 렌바흐하우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렌바흐하우스는 블루라이더파blue rider art의 작품들이 있다. 블루라이더파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칸딘스키,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마리아 폰 베레프킨과 독일 화가 프란츠 마르크, 가브리엘 뮌터, 오귀스트 마케가 만들었다. 이들은 뮌헨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뮌헨에 갔을 때 마침 야블렌스키와 베레프킨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칸딘스키, 파울 클레의 작품들은 시립미술관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에서 접하지 못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만나는 행운이 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행운으로 가득했던 뮌헨 여행이었다.
베레프킨 자화상과 작품인데 색감과 명암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강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구멍이 있는 느낌이었다. 강렬한데 뚫린 거 같은 깊이감이 있는 색감을 표현법은 시선을 잡아끌었다. 발음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려운 이름 베레프킨과 야블렌스키. 이제 친숙해져서 언젠가 한국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베레프킨과 야블렌스키는 함께 살았는데 야블렌스키의 활동을 지원하느라 10년간 작업을 쉬기도 했단다. 여성 화가들은 재능이 출중해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 화가의 뮤즈로만 축소되어 연구된 경우가 많다. 베레프킨이 야블렌스키의 뮤즈로만 남은 걸로 인식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왜곡된 20세기 초 사회 역사를 전복할 수 있다. 역사는 서술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랫만에 여행 사진을 꺼내 놓고 보니까 머나먼 일처럼 여겨진다. 회색 하늘을 머리와 어깨에 이고, 어슬렁거리던 기분 좋은 피로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