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암스테르담에서 프랑크푸르트에 늦게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프랑크푸르트 기차를 타고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입 벌리고 신나게 자고 있었다. 4일간 동행을 했던 후배와 함께. 갑자기 누군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기차 안은 텅 비고, 미처 못 내린 사람들이 마저 내리고 있었다. 우리를 깨운 남자는 프랑크푸르트를 가려면 내려서 갈아타라고 했다. 순간 기차에 무슨 이상이 생겨 운행 중단이 되었다는 걸 감지했다. 벗어놓은 외투를 허겁지겁 입고, 캐리어를 찾아 내렸다. 자다가 날벼락 맞은 꼴이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플랫폼 앞으로 서둘러 걸었다. 차장이 보였고, 프랑크푸르트 가려면 몇 번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물었다. 직행은 없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시내로 가려면 기차를 갈아타라고 했다. 일단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쾰른역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 더 지나서 밤 10시 30분이었다. 피곤했다. 다음날 오전에 뷔르츠부르크에 갔다가 저녁 기차로 베를린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빡센 일정이었다.
아침이 밝았고, 아침 9시 기차를 타야 하니까 후배에게 8시 30분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도착한 지 이틀밖에 안 된 되다가 필요 없는 짐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캐리어를 닫을 때마다 고민스러워했다. 나갈 시간이 가까워져도 후배의 고민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후배한테 혼자 조금 더 호텔에서 쉬다가 늦게 체크인을 하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둘러볼 것을 권했다. 내 입장에서는 후배를 배려한 결정이었는데 후배는 두고두고 자신을 '떼어놓고 갔다'라고 말했다. 내 입장에서는 후배에게 느긋하게 쉴 시간을 보내란 배려였는데 혼자가 익숙하지 않은 후배는 버려진 기분이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상대가 배려로 느끼지 않는 배려는 배려가 아닐 수 있는데 이 날의 상황이 딱 그렇게 되어버렸다. 뷔르츠부르크에서 점심 먹고 있는데 언제 오냐는 후배의 톡에 밥만 먹고 가겠다고 했다. 길을 헤매고 점심도 안 먹고 날 기다리고 있다니까 마음이 그렇게 초조할 수가 없었다. 내 초조함은 후배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일이 짧은 4일간의 동행 동안 몇 번 더 있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한 일은 딱 두 가지였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던츠를 보고, 알테마인교를 걸어서 건너고, 알테마인교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프랑크푸르트로 서둘러 귀환했다. 11월 독일은 공사 중이었다. 레지던츠 정원도, 마리엔 요새도 모두. 관광 성수기를 위해 도로를 정비하고, 관광지를 보수하는 달이 11월이란다. 안 그래도 안내 표지판이 불친절한 독일인데 레지던츠는 입구 표시도 없고, 입구도 굳게 닫혀있었다. 잠기지 않았지만 열어보지 않는다면 문을 닫았다고 믿고 발길을 돌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바로크식 계단으로 유명하다는데 들어가면 널찍한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궁전, 성이 아니라 레지던츠란 말은 몹시 이국적이다. 네이버 사전을 찾았더니 관저, 저택이라고. 궁이나 성이 생활의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비해 뷔르츠부르크 레지던츠는 실제 생활공간이란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는 곳이었다.
소시지와 와인으로 점심을.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이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와인이 맛있는 곳이라고. 따뜻할 때면 알테마인교에서 와인을 홀짝이는 흥취가 있는데 추워서 식당 안에서 와인을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일어나기 싫지만 후배가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