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남부 바이에른, 영어로 바바리아 지방에 건축 덕후인 루드비히 2세가 지은 궁전 두 개를 보러 갔다. 뮌헨에 3일 동안 머물면서 이틀간 Gray line sightseeing 여행사를 통해 데이 투어를 다녀왔다. 데이 투어의 장점은 편하고, 개인적으로 갈 수 있는 것보다 한 두 군데를 더 갈 수 있다. 나쁜 점은 어슬렁거릴 시간이 무척 짧다는 것이다. 린더호프 궁전이 첫 목적지였는데 가는 길에 도로에서 차 사고가 있어서 우리가 탄 버스는 꼼짝 안 했다. 결국 40분 이상 궁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는 뒤 일정이 몹시 헐레벌떡 진행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가이드는 연륜이 많아 보이는 쇼맨십이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홍보하는 일에는 철저하지만 투어의 내용은 살짝 아쉬웠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능숙해지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체득된 능숙함이 꼭 긍정적 효과만 낳진 않는다. 폴은 자기 할 일의 범위를 알아서 딱 그만큼만 일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영물이어서 안 느껴도 되는 것까지 느끼는 슬픔이 있다.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인솔하려면 사무적 친절함이 필요할 것이다.
체코에서 5일 동안 있으면서 햇살의 ㅎ자도 못 봤다. 독일로 넘어오니까 날씨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잠깐씩 해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편했다. 동생이 나를 독일 덕후로 부르기 시작했다. 린더호프 궁전은 듣지도 본 적도 없지만 투어를 신청할 때 코스가 노이슈반스타인neuchwanstein, 오벨암멜가우oberagammergau, 린더호프 궁전linderhof 세 곳이 묶여 있었다. 우리가 보통 퓌센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린더호프 궁전이 있는 곳으로 알프스 자락이 곳곳에서 보인다. 별 거 아니네, 알프스. 관악산 같으니라구. 린더호프 궁전은 여름 궁전이라고. 이 성을 만든 주인은 루드비히 2세이다. 이 냥반의 일생은 좀 특별해서 잘 알려져 있다. 군주제가 쇠락해 가는 시기,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다. 당시 금지되었던 동성을 향한 성 정체성을 가졌고,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바그너 덕후로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모티브로 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바그너를 위한, 바그너의 성이다. 성에 있는 방 곳곳이 탄호이저 주제를 형상화했다. 린더호프 궁전은 베르사유 궁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의 집대성이다. 규모는 작지만 화려하고, 거울의 방이 있다.
루드비히 2세가 지은 성은 고립되어 있다. 당시 요새로 쓰였던 곳을 성으로 개조하는 게 유행이었다고. 통치보다는 문화에 심취해서 성을 짓는데 왕실 재정을 다 써서 파산했고, 왕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죄목으로 폐위되고, 얼마 안 있어서 시체로 근처 호숫가에서 발견되었다. 의문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살이라 공표되었다고 한다. 비운의 왕이었지만 그의 덕질 결과물들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고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번에 여행을 하다 보니 일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현실적 시선을 어쩔...유럽은 국경이 붙어있어서 나라 간 도시 간 이동이 쉽고 간단해서 기차 여행이 편하다. 국가 간 철도뿐 아니라 촘촘하게 지역 열차 망도 발달해서 여기서 파생되는 일자리, 차장이나 창구 직원들(물론 예전에 비하면 디지털화로 인력이 대폭 감소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철도청 직원들은 건재해 보였다), 그리고 각 관광지에서 일하는 인력, 매표소 직원부터 청소, 관리, 복원, 방마다 불량한 관람객을 지켜보는, 의자 하나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직원.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종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미치광이라는 비난을 받은 선조의 덕질은 후손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덕질을 하려면 끝판왕이 될 때까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는 오벨암멜가우로 가서는 20분 정도의 시간을 준다. 비수기라 거의 문이 닫혀 있고, 기념품 가게 몇몇만이 관광객을 맞이했다. 대체 이 마을에 왜 왔는지, 설명 없이 오벨암멜가우 중심에 내려진 38명은 비슷한 동선으로 거리를 거닐다 버스에 오른다. 특이한 건 건물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후다닥 버스에 올라 노이슈타인 성으로 출발한다. 노이슈타인 성은 우리에게 백조성( 슈타인이 백조란다) 디즈니성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 사장이 이 성을 방문한 후, 회사 상징으로 썼는데 디즈니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단다. 하지만 디즈니사의 상징이 되면서 관광객의 관심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이 성의 특징은 고립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요새여서 당연하지만 성으로 가려면 40분가량 하이킹을 해야 한다. 길은 잘 닦여있다. 성에 올라가면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했을 왕의 심정이 전해진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현실 도피를 하면서 더욱더 건축물에 몰입했을 것만 같은. 하지만 그가 실제로 완성된 성에 살지는 못했다고 한다. 덕후와 덕질의 세계를 보면서 덕질로 빠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성의 온전한 모습은 마리엔 다리나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담을 수 있다는데 정보 부족으로 둘 다 안 갔다.
대신 걸어 올라갔다 내려왔다. 땅은 축축하게 젖었고, 길 경사는 완만하고, 길 뒤에 산과 성이 버티고 있다. 성을 바라보면서 성으로 향해 걷는 기분은 꽤 근사했다. 시간에 쫓겨 맥주 한 잔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다음에 가게 되면 개별적으로 가서 좀 더 빈둥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