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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un 15. 2020

동정 없는 세상 살이

영화 <원더 휠>과 <미안해요, 리키>  리뷰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 택배기사인 리키가 한 말이다. 사는 건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모두 힘들다. 택배기사 아빠, 방문 간병인 엄마, 삐뚤어지고 싶은 십 대 아들, 힘든 부모와 아버지와 늘 대립각을 세우는 오빠를 지켜봐야 하는 어린 딸.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산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대출을 받아 택배일을 하지만 매일 일어나는 집안 문제와 설상가상으로 강도들한테 택배물품까지 빼앗기고, 택배기사를 감시하는 배달용 핸드폰까지 파손당해서 빚만 늘어난다. 


택배의 생명은 신속과 정확인데 이건 소비자의 입장이다. 택배기사의 입장에서는 밥 먹는 시간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다. 간병인의 삶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극심한 감정 노동이다. 늙고 아픈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이 배려받고 싶어 한다. 그런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 애비는 환자들을 자신의 엄마처럼 돌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퇴근 이후에도 불쑥불쑥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오고, 버스 정류장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십 대 아들은 아버지와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 점점 문제를 일으킨다.  정학을 받을 위기에도 택배일 때문에 학교에 늦게 가서 아들이 결국 정학을 받는 걸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 열심히 일할 수록 심신은 지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 가족의 삶을 파괴시킬 위기로 내몬다. 힘을 내요, 리키, 중얼거려 보지만 힘을 내도 미래 없이 같은 상황을 쳇바퀴 도는 건 뻔한 일이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커 갈 것이지만 희망적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라도 심신이 지치면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연속해서 탈출구 없는 현실을 비추는 영화를 봤더니 보상심리로 달달한 아이스크림 같은 영화가 보고 싶었다. 잠시라도 현실을 잊게 할 수 있는 달콤함이 그리웠는데, 우디 앨런 감독의 <원더 휠>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원더 휠> 역시 사는 게 만만치 않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인물들은 일탈을 많이 한다. 지니는 재혼을 했다. 정서적 교감이 전혀 없는 남편과 "고마워서 살고, 적적해서 산다."라고 어린 애인인 믹키에게 고백을 한다. 지니는 한때 배우가 꿈이었으나 실제 인생에서 웨이트리스 역을 맡아서 매일 식당에서 일하는 삶을 견딜 수 없다. 마음에 난 커다란 구멍을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고 한다. 지니는 자신을 다시 배우로 만들어줄 수 있고, 어두운 심연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로 믿고, 믹키에게 집착한다. 


믹키는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아름다운 비극을 쓰고 싶다는 작가 지망생이다. 믹키는 결함 혹은 결핍이 비극을 만든다는 것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한 존재의 결핍을 누군가가 채워주는 게 가능할까? 지니의 결핍은 누구도 채워줄 수 없다. 지니 옆에는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이 있는데 엄마의 정서적 불안을 보면서 커다란 결핍을 갖게 된다. 아이는 화를 누르지 못할 때는 불을 지른다. 활활 타는 불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지르고 도망치기도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불행한 엄마를 지켜보는 아이의 불행.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엄마라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불행을 참아야 한다는 말은 거짓 명제이다. 모성은 엄마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이의 도피처는 영화 보기와 불 지르기이다. 


우디 앨런 감독 영화에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환상을 갖는 인물들이 종종 나온다. 그들은 판타지 속에 사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 인물이다. 우리는 일을 그만두고 싶으면 퇴사자의 이야기를 찾고, 연애가 고프면 로맨틱 코미디를 찾는다. 인간관계가 힘들면, 모든 해답을 명쾌히 알고 있는 척하는 사람들의 말을 찾는다. 하지만 현실은 하던 일을 해야 하고, 혼밥과 혼술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관계의 어려움 극복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한다. 스트레스 푸는 법을 익히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가끔씩 현실을 부수고 나온 '영웅'의 이야기에 열광하면서 대리 만족을 해야 한다. 대리 만족도 만족일까? 


두 영화 모두 산다는 건 고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안 봐도 알고 있는 진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화는 보는 동안만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영화의 전성기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 극장을 찾을 때였다. 한 잔의 술처럼 영화의 낭만적 허구는 현실을 나와 잠시 동안 환상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낭만적 판타지를 그리워하는 거 보면, 현실이 답답하다는 말이 되겠다. 


긍정적인 자기 위로의 말은 유효기간이 다 했나. 월요일인데 한 주를 비관으로 시작하는 것은, 다 영화 탓이라고 꼬장 부리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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