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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un 23. 2020

그렇게 소년은 사랑을 배워간다   

영화 <머드> 리뷰 


사랑은 수 없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하나로 정의 내리기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사랑은 예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다.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지만 그럼에도 싫증 나지 않는 주제이다. 영화 <머드>는 범죄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사랑을 주제로 한 성장 영화이다. 다층 플롯으로 이루어져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헌신적 사랑 


영화를 이끌어 가는 커플은 머드와 주니퍼이다. 하지만 머드와 주니퍼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인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은 한때 함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있지 않는다. 머드는 주니퍼를 괴롭힌 남자 친구를 죽여서 지명수배자로 작은 무인도에 숨어 산다. 이 문장 하나만 보면 치정극인데 이야기를 진부하게 끌어가지 않는다. 머드는 주니퍼와 탈출할 준비를 하는데 14살 소년 앨리스는 훌륭한 조력자이다. 주니퍼가 앨리스에게 묻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왜 우리를 돕는 거니?"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니까요." 


앨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머드와 주니퍼는 분명히 사랑하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함께 떠나지 않는 걸 알게 되고, 앨리스는 받아들일 수 없다. 주니퍼는 머드를 사랑하지만 평생 숨어서 도망 다닐 수 없다고 한다. 바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 하는 하는 걸 보고, 앨리스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이라면서요. 이 영화가 범죄영화처럼 사건을 따라가지만 성장 영화인 이유이다. 14살 소년의 시선으로는 머드와 주니퍼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남녀가 지독히 사랑하는 일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일 수 있다. 머드는 주니퍼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을 죽였다. 머드는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내던졌다. 주니퍼는 머드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없다. 머드가 탈출하기 전날 먼발치에서 주니퍼가 묵고 있는 모텔의 방 앞에서 손을 흔들고, 시선을 교환한다. 머드에게 주니퍼는 모든 행동의 동기이자 추진력이지만 주니퍼가 자신과 함께 산다면 불행으로 끌어들인다는 걸 알고 있다. 머드는 주니퍼에게 모든 것을 주는 헌신적인 사람이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로 세뇌를 당해왔지만 막상 사랑에 빠지면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머드의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이 아니어서 놀랍다. 거칠어 보였던 그의 외모 속에 뜨겁고, 아이 같은 순수한 심장이 뛰고 있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사랑은 변한다 


앨리스는 머드를 보자마자 친구가 된다. 앨리스는 왜 머드에게 끌렸는가? 그가 지명수배를 받는 살인자인 줄 알면서도 왜 그의 탈출을 돕게 되나? 앨리스는 엄마와 아빠는 곧 이혼할 예정이다. 많은 부부들처럼 생활고도 있고, 사사건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앨리스의 부모에게 결혼 전 사랑했던 과거는 빛이 다 바래고 현재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만을 요구한다.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서로에게 넌더리가 난다.  아들 앨리스의 존재만이 두 사람이 한때 사랑했던 걸 상기시켜줄 뿐이다. 앨리스의 아빠는 "사랑을 믿지 마라, 앨리스. 조심하지 않으면 그게 널 잡아먹을 거다."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사랑을 굳게 믿는다. 머드처럼. 아빠와 엄마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앨리스의 세계와 보통 어른의 세계에서 사랑은 다른 모습이다. 굳건해야 할 사랑은 흔들리고 깨지기 쉽다. 앨리스의 부모도 한때 사랑을 믿었고, 사랑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제 희망은 더 이상 없고, 남은 건 서로를 지긋해하는 마음이라니, 어른의 세계는 오묘하다. 사랑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변함없이 사랑을 유지하는 건 힘들다. 우리는 바쁘거나 힘들면 사랑을 잊는다. 사랑을 잊어도 관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른의 삶이다. 


애들은 모르는 어른의 세계  


어린 앨리스에게 어른처럼 삶의 '관성'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머드는 어른이지만 앨리스처럼 관성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서 점점 머드를 지지하게 되는 이유이다. 머드는 앨리스가 구덩이에 빠져 뱀에 물렸을 때, 지명수배자라는 신분을 잊고 앨리스를 안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린다. 머드는 일단 마음을 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다. 얄팍하고 계산적인 어른 세계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머드는 보통 어른들과 영혼의 결이 달라서 고난에 시달린다. 


앨리스는 사랑에 입문하고 상처를 받는다. 데이트를 하면 사랑하는 줄 알았던 앨리스. 여자 친구라고 뼛속까지 생각하는 여자가 그저 데이트 한 번 했을 뿐이지,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앨리스는 여러 가지 사랑을 겪고 보면서 어른의 사랑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기쁨도 있고, 상처도 있고, 절제도 있고, 사랑하면서도 헤어지는 어른들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앨리스는 머드처럼 사랑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어른이 될까, 아니면 아빠처럼 사랑을 믿지 않는 어른이 될까. 어느 쪽이든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너무 오래 전에 관성으로 사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머드 같은 사람을 보면 몹시 끌린다.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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