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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ug 27. 2020

'바람'의 파장

영화 <미성년> 리뷰 



각자 가정이 있는 남녀가 바람을 폈다. 남자는 직장에서 일이 잘 안 풀려 술 먹고 술김에, 여자는 도박에 빠져 가정을 팽개친 남편 대신 식당을 혼자 운영하면서 심신이 지쳐서. 이들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개인으로 바라보면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다 바람을 피운다면 세상은 혼란과 고통으로 넘쳐날 것이다. 우리는 바람피우는 이야기에서 바람을 피우는 주체들의 서사에 익숙하다. 즉 성인의 영역에서 불륜을 다루곤 한다. 하지만 영화 <미성년>은 바람을 피운 남녀의 청소년 아이들의 관점에서 불륜을 바라본다. 그래서 훨씬 고통이 더 구체적이고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바람을 피웠을 때,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 당사자들은 과연 행복할까? 


일부일처제는 모계 사회에서 가부장제로 넘어오면서 확립된 윤리의식이다. 모계 사회에서는 아이를 양육하는데 공동체가 참여해서 가부장제와 같은 가족의 개념이 없었다. 다시 모계 사회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일단 현대적 의미의 '가족'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협의의 개념을 모계 사회를 떠올리게 확장시킨 것처럼 보인다.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 주리와 윤아. 주리의 아빠와 윤아의 엄마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조산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주리와 윤아. 모두에게 반갑지 않은 아이이고, 필요 없는 남동생이다. 하지만 아이는 태어났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으며, 생명의 존엄성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두 가족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인 아이를 두고 두 가족 구성원들은 묘한 감정을 겪는다. 죄책감, 미움, 사랑이 혼재한다. 부모가 멀쩡히 있는 아이의 입양이 거론된다. 주리의 엄마는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 남편을 증오하지만 남편의 내연녀, 윤아의 엄마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조산이 자신의 탓인 거 같고, 아이가 결국 죽는데 아이의 죽음도 자신의 탓인 거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사춘기이고 입시를 앞둔 딸 주리와 윤아에게는 어른으로서 안겨준 고통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무척 힘든 다층적 입장이라 남편의 부정에 대해서 일차원적 증오 표현은 오히려 할 수없게 된다. 


윤아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았지만 환영받지 못하고, 그런 심정을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어서 막말을 일삼는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목소리가 커져서 싸우려고 든다. 건강하지 못한 모습인 걸 알면서도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오히려 딸 윤아가 엄마보다 더 어른스럽게 보인다. 윤아는 엄마가 이성을 놓아버린 모습에 익숙해서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갓 태어난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 키우기로 결심한다. 십 대들은 어른보다 더 유연한 사고를 한다. 윤아와 주리는 부모 때문에 서로에게 적대심을 갖지만 동생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동생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이 싹튼다. 눈도 못 뜬 채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작은 생명체에서 생명의 신비를 알아간다. 어느새 윤아와 주리는 동생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려고 동분서주한다. 동생이 버티지 못하고 죽자 무심한 어른들과 대조적으로 시체를 찾아내 화장 후 한 줌도 안 되는 유골을 둘이 우유에 타서 나눠 마신다. 두 사람의 몸에 동생이 살아있다고 믿는 것처럼. 


영화에서 가장 나쁜 놈은 주리 아빠이다.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면서 방관하는 인물이다. 결국 바람의 속성이 이런 것일 것이다. 원하지 않는 결과에 괴로워하는 게 전부인 남자. 뒷수습은 나머지 가족 구성원의 몫으로 남는다. 감정적으로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간직한 고통이 나머지 가족에게 문득문득 찾아올 것이다. 주리 엄마는 윤아의 엄마가 출산한 후 몸조리는 커녕 비난 받은 것에 대한 동정을 느낀다. 어쨌든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이를 잃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아이를 잃었다는 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일 것이다. 주리 엄마는 남편의 여자이지만 같은 엄마라는 입장으로 애잔한 죄책감을 느낀다. 불륜이 스펙터클이 아니라 불륜 후에 찾아오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다루었다. 바람이 두 가정에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의 넓이와 깊이는 건물도 부술 수 있다는 태풍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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