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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Oct 21. 2020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

영화 <연애담>


연애에 대한 담론은 주로 이성애를 기반으로 다루어진다. 이성애를 보편적 사랑으로 보고, 동성애를 육체적 욕망과 연결시키는 시선이 있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달리 과연 육체적 욕망이 우선할까?


 연애나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판타지에 기반한다. 사랑이 주는 기쁨을 확대한다.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 안 하는 사람을 좌절시키곤 한다. 하지만 과연 연애가 즐겁기만 할까? <연애담>은 판타지적 요소가 하나도 없이 현실적이다. 동성애를 다루지만 연애할 때 겪게 되는 즐거움과 슬픔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잘 포착한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옷차림을 점검하고, 화장도 한다. 혼자 있을 때도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 나온다. 이러한 행복한 시간이 변함없이 계속된다면 예술 영역에서 사랑을 다룰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즐거운 시간은 짧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몰라서,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밤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날이 생긴다. 그 사람의 마음을 가늠하느라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사랑하는 대상과 내 마음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극이 비롯된다. 너에 대한 내 마음이 이렇게나 커, 하고 외쳐도 어느 순간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곤 한다. 상대가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리면 상황은 더 암담해진다.      


윤주는 지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윤주는 소심하고 지수는 적극적이다. 윤주는 오밤중에 지수네 집 앞에서 기다린다. 윤주는 군고구마가 식지 말라고 품에 품고 있다가 지수가 나타나자 군고구마 봉지를 내민다.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윤주는 이 말을 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이처럼 작은 일상적 행위에서 연인은 사랑의 밀도를 감지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나’와 있지 않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더 알고 싶어 한다. 그의 자잘한 일상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자신의 기준에 안 맞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일상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일상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하고 싶은 욕구가 서서히 생긴다.       


 "다른 일 하면 안 돼? 나랑 살 생각 같은 건 안 해봤어?" 등등. 걱정과 불안이 사랑의 기쁨과 자리를 바꾼다. 미대 대학원생인 윤주는 교수의 총애를 받는 예비 유망작가다. 지수를 만난 후 감정의 파도타기를 해서 미래가 엉망이 돼버린다. 두 사람은 동성애자이다. 사회적 시선은 두 연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지수는 윤주와 성정체성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민한다. 지수는 혼자 살다 집으로 들어가서 아버지랑 함께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다. 그녀는 서울에서 월미도까지 찾아오곤 하는 윤주에게 냉랭하게 대하고 아버지가 주선한 남자와 선을 본다. 윤주 역시 룸메이트한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하자 싸늘한 태도와 맞닥뜨려 정신적 갈등은 배가 된다. 윤주는 가장 친한 남자 사람 친구에게 속을 털어놓는다. 그는 윤주의 성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공고한 가치관을 내비친다. 윤주는 애인한테도 이해 못 받고 주변 친한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 두 연인은 서로의 감정 때문에 힘들고, 주변의 시선 때문에 힘들다.      



서로 연락을 없이 이렇게 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지수가 어느 날 불쑥 윤주를 찾아간다. 윤주는 지수한테 화가 나서 뻣뻣하게 대한다. 지수가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윤주의 마음은 녹질 않는다. 윤주의 집에서 지수가 윤주를 안고 낮게 속삭인다.   

   

보고 싶었어.      


헤어졌던 연인에게 필요한 말은 "보고 싶었어" 이 단 한마디 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나 설명보다 확실한 마음이다. 윤주의 마음이 흔들린다. 윤주와 지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즐거움과 슬픔의 시소를 탈 것이다. 윤주와 지수 커플은 육체적 욕망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끌려서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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