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Dec 16. 2020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넷플릭스 <매기스 플랜>을 보고 


얼마 전에 방송인 사유리 씨가 비혼 출산을 했다. <매기스 플랜>의 트레일러를 보고 사유리처럼 비혼 출산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비혼 출산을 원하는 여자, 매기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그것도 가정이 있는 남자와! 그러다 그 남자를 반품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이면에 결혼관, 배우자관에 대한 전복이 실린 이야기이다. 



<매기스 플랜>은 관계, 나아가 결혼 생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남녀 관계와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인가. 혼인 서약으로 묶이면 남녀, 특히 여자는 헌신한다. 여자는 자신이 너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계속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이런 인식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결혼을 너무 신성하게 보는 시선에 있지 않을까. <매기스 플랜>에서 결혼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노력해 보고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결혼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유머스럽게 보여준다. 당당하고 독특하게 매기를 연기하는 그레타 거윅의 힘도 크다.  


    

매기는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기를 원하다 교감이 잘 되는 사람, 존을 만나 사랑에 빠져버린다. 존은 두 아이가 있고, 컬럼비아 대학교 종신 교수인 아내가 있다. 존은 관계를 '정원사와 장미' 이론으로 정의한다. 관계에서 한 사람은 꽃이 되고 한 사람은 꽃이 피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존의 가정에서 장미는 ‘잘 나가는’ 아내이고 그는 정원사이다. 존은 자신의 욕망을 고백한다. 더 이상 아내의 정원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존은 소설을 쓰는 중이었고 매기는 그가 소설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울 정원사가 되기로 기꺼이 자처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매기는 심지어 전처의 아이들까지 돌본다. 세 아이를 돌보면서 매기는 자신의 일을 하기 버거운 걸 깨닫는다. 존을 장미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기는 영원히 정원사로 남아야 한다. 존은 배려심은 눈곱만큼도 없고,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조차 매기에게 맡겨버린다.      



매기가 친구에게 불평을 하자 친구가 말한다. "너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그 불행한 결혼에서 나오질 못하는 거야?"

      

매기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매기의 엄마 역시 혼자 매기를 키웠고, 엄마와 살았지만 행복했다고 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혼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존의 전처 조젯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집을 나갔다. 집에 남편이 없는 것 빼고는 변한 것이 없다. 존은 여전히 아이들의 아빠이다. 조젯이 바쁠 때는 존이, 더 정확히는 존의 착한 새 아내 매기가 아이들을 더 잘 돌본다. 조젯은 남편이 없어도 여전히 ‘장미’이다. 정원사였던 존이 신분 상승(?)을 위해 운 좋게 재혼을 했지만 그는 장미도 아니고 이제 정원사도 아니다.     


매기는 깨닫는다. 존은 정원사로 살아가는 게 낫다는 것을. 자신이 존의 인생에 개입해서 장미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영화가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로 가는 이유는 바로 매기의 행동력에서 나온다. 매기는 존의 말대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적이라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씩씩하게 살 수 있다. 


이 영화의 분류를 보면 ‘로맨스’이지만 일반적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다. 일반적 로맨틱 코미디가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해프닝이 일어나고 이벤트를 벌여 결국 상대의 마음을 얻는 플롯이다. 반면에 <매기스 플랜>은 매기, 조젯, 존 모두 교수라는 대등한 사회적 위치에서 출발한다. 일하는 여성이 가정을 이루면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배우자의 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절히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고정된 수입은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음식과 집, 옷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수입은 증오심을 끝내는 힘이 있다고 한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게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계급이나 성을 뭉뚱그려서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었지요. "    



매기는 존과 3년 동안 산 후에 결혼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을 한다. 매기는 존에 대한 미움이나 원한을 갖지 않는다. 그저 한때 함께 살았던 남편으로 대한다. 조젯 역시 존을 다시 남편으로 받아들인다. 조젯은 존을 자신의 정원사로 보고 성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 한국 정서로 이게 말이 되나, 하는 당황스러움이 있다. 처음에는 똑똑한 매기가 왜 빙충스런 선택을 해서 인생을 꼬이게 만드나 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매기와 조젯의 배우자관은 너무 진보적이라 불편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고 <매기의 플랜>은 말한다. 인생을 이루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 아이, 애인 혹은 배우자, 친구, 동료 등등. <매기스 플랜>은 한 가지 요소가 불량이라고 해도 불행한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불량한 요소를 제거해서 행복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서양 속담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이 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으면 부딪쳐서 깨지니 위험은 고루 분산시키라는 말인데 인생에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