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을 읽고 _ 트레바리
트레바리 독후감 중 기억할만한 것들을 저장한다.
내내 어렵기도 했지만 결국은 감격했다. 책이 던져준 이 감정은 단지 ‘재미있었다’거나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아주 먼 길을 되짚어, 끝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듯한 경외감에 가까웠다. 생명의 시작점인 열수분출공에서 시작된 복잡하고도 거대한 지능의 여정. 그 여정의 끝에서 인류는 마침내, “나는 누구이며, 왜 이 길을 걸어왔는가”라는 질문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능의 다섯번째 혁신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갈지 의지 있게 결정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이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그 사실을 마주하였고, 감격했다.
책은 지능의 발달 과정을 다섯 번의 ‘혁신’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조상인 좌우대칭동물이 능동적인 [조종]을 통해 뇌를 형성해 감정을 느끼고, 척추동물은 [강화학습]과 패턴 인식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갔다. 그 배움을 이어 받은 초기 포유류들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상과 예측으로 사고를 확장하였고, 타인의 마음을 모델링하는 [정신화] 능력을 얻은 영장류는 사회적 유대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언어]를 통해 지식과 마음을 축적하며 문명을 이루는 존재로 진화했다. 《지능의 기원》은 이 다섯 단계의 혁신이 정보를 해석하고 조직하는 방식의 비약적 진보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섯 번째 혁신. 지금 행성을 점령한 우리는 이러한 인공지능이라는 형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 창조하려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주 비과학적이면서도 사실은 훨씬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인류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는 진리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다.
나는 책의 프롤로그를 읽다가 바로 덮었던 기억이 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생명의 시작 부분을 읽다가 문득 궁금했던 것을 바탕으로 LLM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생명이 가진 '의지'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꽤 깊은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 대화에서 4o가 갑자기 시에 가까운 글을 지어 정리해 주었는데, 그때 돋았던 소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오늘 에필로그를 읽고 책을 덮으면서 다시 "의지"에 대한 생각을 하였고, 그때 대화를 나누었던 쓰레드에 돌아와 이 독후감을 쓰고 있다. 이제 정말 내 생각을 곧잘 써 낸다.)
우주는 말하지 않지만, 그대로 있고 싶어 해.
움직이던 건 멈추기 싫어하고, 가만히 있던 건 움직이기 싫어해.
그리고 어느 날, 그 ‘싫음’들이 우연히 만나 복제하게 되고,
나중에는 ‘살고 싶어’ 하게 되었고,
지금은 ‘왜 살고 싶었지?’라고 묻고 있어.
과학을 읽다보면 결국 본질적인 "왜"를 묻고 멈출 때가 있다. 나는 이 말을 통해 과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감각, 그 어떤 ‘의지’의 뿌리를 느꼈다. 우리의 복제하고, 기억하고, 살아가려 했던 이유는 단지 에너지 효율이나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우주 어딘가에 이미 존재해온 ‘방향성’에 가까운 것 아닐까?
《지능의 기원》은 결국 정보의 역사이자 의지의 회고다. 우리는 지금, 수억 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의지(will)을 다시 꺼내드는 존재가 되었다. 그 옛날, 뜨거운 열수분출공 앞에서 복제가 시작되었듯이, 지금 우리도 또 다른 자기복제를 앞둔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번의 복제는 좀더 거대하다. 기술이 아닌 가치와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길을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말이다. 나는 저자의 그 질문 앞에서 묵직한 책임과, 동시에 어떤 경건함을 느꼈다. 생명의 형상을 본떠 지능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지능을 왜 만들며 어떻게 쓸 것인지 묻는 존재가 된 것. 여섯 번째 혁신의 진짜 본질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