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2] 18코스, 내 안의 두려움과 맞짱 뜨기
따뜻한 온돌방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온몸에 아침 햇살만큼이나 포근한 온기가 퍼져 나갔다. 그동안 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전날 비바람과 싸우며 마음에게 천천히 걷자고 얘기해 준 나는 여느 때처럼 부랴부랴 올레길 준비를 하는 대신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아무렴 어때, 저녁에 한 시간 더 늦게 자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11시가 넘어서야 이번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올레 18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조천부터 제주도심까지 19.8km의 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비바람과의 맞짱 뜨기였다. 구름과 태양의 싸움에서는 먹구름이 이겼고, 오늘은 내가 그 구름을 이겼다! 성난 파도가 치는 해안길을 따라 거센 바람이 나에게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이젠 두렵지 않았다. 바람소리를 뚫고 소리쳤다. “잘하고 있다! 성공했다!”
지난 5일간 무사히 살아남다 못해 비가 오나 더 센 비가 오나 또 한 번 100km를 향해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바람 따위에게 기죽지 않았다.
(사실… “나는 빛나는 별이다!” 라며 양팔과 양발을 벌려 내 몸으로 별 모양을 만들기까지 하며… 나는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세뇌하며 걸었다. 사람이 없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하하)
18코스는 제주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한 수덕물이라는 여탕도 보았고, 군사적 용도로 횃불 연기를 냈던 연대도 지나쳤다. 조천마을에서 신촌마을로 넘어가는 ‘대섬’은 용암이 표면을 들어 올려 만들어진 빵모양의 지형인데 파도 따라 물결치는 억새풀 사이로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있었다. 옛날에는 무슨 소원을 빌며 돌을 쌓았을까? 무병장수, 장원급제? 혹시 나처럼 평온한 삶도 소원이라고 빌었을까? 조심스레 제일 몽글한 돌을 주워 마음을 위한 삶을 소원하며 탑을 쌓았다.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는 닭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닭모루’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진짜 닭 머리처럼 생겼는지는 비행기에서 봐야 될 것 같다.) 바위 위 세워진 정자는 내 마음처럼 흐트러진 억새들을 바람에 맞춰 지휘하고 있는 듯했다.
신촌마을은 제사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제사 밥을 먹기 위해 조천에서부터 1시간이나 넘게 걸어갔던 마을이라고 하는데 밥을 먹기 위해 1시간 걷기라니 대단하다. 옛날에는 친척들을 보기 위해 다 같이 몇 시간에 걸쳐 걸어갔을 길을 지금은 나 혼자 걷고 있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지면서도 외롭기도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꽤 있는 삼양해변에 도착했다. 검은 모래로 유명한 이 해변에서는 모래들이 빗방울을 맞으며 반짝반짝 빛을 냈다. 이제는 비와 바람에게 정이 느껴졌다.
도심으로 들어가기 직전 사라봉 오름에서 최고의 친구를 만났다. 바로 토끼! 난생처음 야생토끼를 본듯하다. 너무 신기해서 조심조심 앞으로 다가갔는데 도망가지 않았다. 심지어 아예 옆에 앉았는데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1도 안보였다. 그? 그녀? 는 오롯이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로 먹는 것! ^^ 배가 무척이나 고팠나 보다. 정말 쉬지 않고 끊임없이 먹었다. 턱관절이 아팠는지 이제 졸린 듯 눈을 끔뻑이는 토끼를 보다 시간을 확인했다. 행복함에 빠져 벌써 20분이나 지나있었다. 그런데 잠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토끼만 바라보고 있는데 행복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기 할 일에만 몰입되어 있는 토끼를 보며 나 또한 아무 생각 없이 토끼 보는 일에만 몰입되어 행복했다.
졸고 있는 토끼를 뒤로하고 도심으로 들어와 새로 생긴 ‘4.3 추모전시관’을 관람해 보기로 했다. 사실 좀 추워서 잠깐이라도 몸을 녹이려 들어갔는데, 입장부터 수용수분들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영상이 나와 울컥했다. 억울하게 수용소에 들어와 언제 죽을지 모를 두려움 속에서도 ‘저는 잘 있습니다’라며 가족을 안심시키는 편지를 쓰셨다는 게 존경스러웠다.
토끼 덕분에 밤이 어둑해져서야 마지막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아무도 없었는데 멋지게 나이 드신 사장님께서 말벗이 되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신기하게 오늘 올레 끝자락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던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또 듣게 되었다.
“올레 완주 다 하면 뭐 할 거야?”
“글쎄요, 사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걷고 있어요. 하하”
“행복? 그것도 머리가 만들어 낸 관상일 뿐이야.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1년만 너에게 선물해 봐. 100년 중 1년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야. 무슨 일 안 일어나.”
“안 돼요, 그럼 퇴사해야 되는데 그러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걸요.”
“부모님이 속상해할까 봐? 그건 핑계야. 그냥 너는 스스로가 두려울 뿐이야.”
“…”
“밖이랑 싸우지 말고, 안으로 싸워. 춥다. 오늘은 네가 돈 냈으니까 여기가 네 집이야. 얼른 안으로 들어와~”
말문이 막히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제주도에서는 비구름과 싸웠고, 서울에서는 내 밥그릇을 위해 싸웠다.
그런데 내면의 두려움과 싸운다? 두려움을 밀어내려고 했지 싸워보려고 한 적은 없다. 오히려 싸움이라는 단어는 지난 며칠간 푹 빠져있던 평온이라는 단어와 대립적이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사장님 말씀이 맞았다. 내가 혼자였더라도 퇴사는 못했을 것이다. 왜? 안정적이지 않을까 봐, 삶이 무료해질까 봐, 백수라고 보일까 봐 (아니지 백수가 맞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에 길을 잃을까 봐…에 대한 실체 없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자기 세뇌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잠시 밀려진 두려움은 아직 불씨가 살아있어 언제든 다시 당겨져 와 나의 정신력을 탓하게 만들었다.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서웠던 바닷바람이 지금은 내 마음을 씻어내어주려 했다. 이제 비바람과 나, 우리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가 맑아 맞짱을 뜨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의 두려움도 바라보았다. 인정에 대한 두려움, 평가에 대한 두려움, 거부당할까 봐의 두려움… 많은 부분이 오늘 만난 토끼도 이겨낸 ‘사람과의 관계 속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평온한 건가? 그렇다고 인생을 혼자 살 수도 없고… 순간 두려움을 물리칠 단순한 방법으로 두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대항마, 믿음을 더 크게 키워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씨앗은 나의 목적과 목표를 일단 정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내가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커졌을 때를 생각해 보니 작은 약속이라도 이행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4년 목표는 나를 향한 믿음 키우기로 정하고, 서울로 돌아가 작은 목표부터 수행하며 나를 더 자주 믿어주기로 했다. (저녁보다 아침에 브런치 글쓰기 5번 중, 오늘 1회 실천 중이다!)
어쩌다 보니 하루 5천 보도 걷지 않던 내가 올레길 200km를 완주해 버렸다. 각 코스의 중간 지점, 종착 지점 목표가 없고 ‘예쁜 제주도 많이 걷기~’의 미션이었다면 2km는 걸었을까 싶다. 결국 올레길도 종점 스탬프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지난 며칠간 비구름과 맞짱 떠서 결국 싸우고 친구까지 된 것처럼, 나의 인생길도 방향을 설정해 주고 나를 좀 더 자주 믿어줘야겠다.
어느새 104.8km에 걸친 나에게로 걸어가는 두 번째 여행이 끝났다.
첫 번째 여행은 나에게 있어 행복은 ‘쉬는 것보다 작은 성취감에서 더 크게 다가오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극대화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 주었고,
두 번째 여행은 건강한 행복을 위해서 ‘일상의 평온을 먼저 챙기고,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본질적인 이유는 두려움과 싸워줄 나를 향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를 주었다.
결국 행복이구나.
다음 나에게로 걸어가는 여행은 어떨까, 그때쯤에는 두려움에 맞서 싸워 실패든 성공이든 했겠지? 일단 용기 내어 계속 걸어보려 한다.
태양을 이긴 먹구름도 이길 수 있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