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3] 1-1코스 우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클리셰한 말이다. 1년 만에 찾은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이 말이 왜 클리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몸소 깨달았다. 내가 바뀌어있었다.
성산동에 내리자 서울은 빨리 잊으라며 콧 속으로 마른미역 냄새가 (사실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지만) 훅 들어왔다. 항상 9월에 오게 되는 제주도. 여름휴가 시즌을 놓치고 늦게나마 찾아오는 곳이다. 그리고 늦게라도 늘, 그렇지만 다르게 반겨주는 곳이다.
세 번째 나에게로 걸어가는 올레길의 시작은 비수기에 가면 좋다는 우도 1-1코스였다. 천진항에 내리자마자 중국인 줄 알았다. 중국어로 자전거와 전동차 영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서 아무도 안 물어본 걸까? 26도의 날씨가 너무 더워 살짝 자전거의 유혹에 빠질 뻔했는데 덕분에 고민 없이 바로 걷기 시작했다. 도로 위 뚜벅이는 나뿐이었다.
바다 한 번, 핸드폰 한 번. 오전에도 일을 하느라 아직 일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몇 번 길을 잃다가 30분 후, 하얀 모래가 눈부셔 눈이 뜰 수 없을 정도라는 사빈백사, 홍조단괴해빈에 도착했다. 사실 모래보다 바다가 보석처럼 빛났다. 바다는 언제나 질리지 않는 진리다. 또 30분 후, 하우목동항에 도착했다. 이런! 나에게로 걸어가는 여행이 아니라 핸드폰으로는 일을 하면서 그냥 올레 스탬프를 찍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마침 내륙코스가 시작됐다. 핸드폰을 집어넣자.
말 세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10년 전 친구들과 우도에 왔을 때 본 말들일까? 당시에 한 친구가 술을 너무 마셔서 배에서 토하고 승마체험도 못한 기억이 왜 떠오르는지... 그랬던 내가 지금은 1년 넘게 금주하고 있다니... 나 다행히 주량이 변했구나.
오봉리 마을 초록 지붕 위에 두 마리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노란 고양이는 일어서서 제 딴에 으르렁 거리고 있고, 검은 고양이는 편하게 앉아서 꼬리까지 흔들고 있었다. 사랑싸움인가? 노랑이 혼자 왜 발작하지? 처음에는 더 강해 보였던 노랑이가 사실은 더 초라해 보였다. 혼자만 소리 지르느라 목도 아플게 분명했다. 가만히 있는 검정이는 오히려 평온한데 말이다.
누가 이길까 궁금해서 한동안 쳐다보는데 노란 고양이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제주도 출발 전 날 별것도 아닌 걸로 엄마한테 투정 부린 나의 모습, 회사에서 나 혼자 진지해져 인상 쓰고 있는 모습, 기억도 안 나는 이유로 혼자 짜증 낸 흔하디 흔한 내 모습이 모두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노란 고양이는 강한 게 아닌 사실 그냥 하수, 평온한 검은 고양이가 진짜 승자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다 평온한데 왜 나만 으르렁거렸을까? 목만 아프게. 검은 고양이 네로~네로~를 흥얼거리며 검은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 ^^
흥얼흥얼 하다 보니 우도의 중간 스탬프, 하고수동해수욕장에 도달했다. 잠시 너무 예쁜 하늘 아래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평온한 내륙으로 들어섰다. 핸드폰도 없고, 사람도 없고, 드디어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작년에는 행복, 평온에 대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이번에는 팀장, 성과만 생각났다. 나만 생각하자 하면서 어느새 “최고의 팀장은 안되어도 부끄러운 팀장은 되지 말자”를 끄적이며 30일 동안 지킬 팀장 행동지침서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정리된 노트를 보고 있는 나는 행복한 나였다. 심지어 올레길을 마무리 짓고 달라진 모습으로 출근까지 하고 싶어졌다 (아주잠깐). 출근을 생각하면서 행복해지다니. 내 생각의 흐름이 완전히 변했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 교수는 행복공식을 소유 나누기 욕망이라고 주장했다. 1년 전 올레길을 걸을 때만 해도 이 주장에 100% 동의하고 욕심을 버리고 평온해지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욕망은 올리고, 그걸 토대로 무언가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고있다. 나의 행복공식을 재정의해보았다.
행복 = 생산/욕망 +소비 -소비
나는 소비보다 어떤 가치를 생산할 수 있음에 행복했고, 소비는 행복을 주지만 또 행복을 앗아가기도 했다. 단순히 맛있는 밥을 먹고, 곧 칼로리를 불태워야 할 생각에 행복도가 줄어드는 것처럼 욕망 없는 소비는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행복에 대한 나의 정의가 변했다.
우도 올레길의 피날레는 우도봉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도봉으로 가는 올레길이었다. 조지아 트레킹 코스를 연상케 하는 광활한 알프스 위에 말들이 뛰어놀고 있고, 세상에 이렇게 진한 초록색을 태어나서 봤을까 싶을 정도로 잡초마저 제 색깔을 강렬히 내고 있었다 (스위스도 꼭 가봐야지).
그리고 하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름에 반했다. 넓은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보느라 6시 마지막 출항배도 놓칠뻔했다. 걸으랴, 시간 확인하랴, 하늘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하늘은 볼 때마다 미세하게 달랐다. 당연했다. 구름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니까. 순간 주당에서 금주로, 나의 생각의 흐름, 행복의 정의가 변한 것 또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하늘은 단 한 번도 없듯이,
구름은 늘 지나가듯이,
이 세상 모든 것은 구름처럼 지나가는 거구나.
힘듦도, 여유도, 행복도, 돈도.
힘들 때도 구름을 생각하면 되겠다. 정말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노란 고양이에서 검은 고양이로 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