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자격증을 모으는 데 빠져 육해공의 탈것을 몰 수 있는 자격증을 모두 땄다. 그중 배 면허는 보통 보트면허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는 해양경찰청에서 주관하는 동력수상레저기구조종면허다.
이 면허는 일반 운전면허처럼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뉜다. 필기는 문제은행을 한 번 훑어본 뒤 바로 통과했는데 항공 용어 중 상당수가 배에서 차용한 말들이라 익숙했기 때문이다. 항공기를 뜻하는 Air-craft라는 명칭부터 이미 공중의 배라는 뜻이며,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는 곳 역시 Air-port(공중의 항구, 즉 공항)가 아닌가.
실기시험도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한 번만에 합격했다. 시험장에서 배를 처음 몰았음에도 바로 붙을 수 있었던 건 운도 따랐지만 계기판을 읽는 법이나 스로틀 조작법, 체크리스트 사용, Roll in / Roll out 요령들이 항공기와 꽤 비슷했기 때문이다.
항공에서 좌선회, 우선회를 Port Turn, Starboard Tur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배의 좌현, 우현을 뜻하는 명칭이다.
기장은 항공 용어로 Captain이다. 말 그대로 선장에서 그대로 따온 명칭이다.
해군의 Captain은 대령 계급이고, 공군에서 Captain은 대위다. 우리말로 하면 전혀 다른 계급이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바다든 하늘이든 '배를 책임지는 사람'을 Captain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또한 에어라인 부기장을 뜻하는 명칭은 Copilot이 아니라 First Officer다. 배의 일등항해사를 뜻하는 말이다.
항공 규칙 역시 배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밤에 비행기를 보면 왼쪽에는 빨간 불, 오른쪽에는 초록 불이 깜박이는데, 이는 먼 거리에서도 배에서 진행방향을 확인할 수 있게 달았던 항해등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서로 오른쪽으로 피하고, 경로가 겹칠 것 같으면 오른쪽에 있는 항공기가 우선권을 가지는 규칙도 그대로다.
기술이 발전하고 우주시대가 열려도 이런 규칙들은 그대로일 것 같다.
바다 위를 다니는 배(Craft)나, 구름 위를 나는 공중의 배(Air-craft)나, 은하수 위를 항해하는 우주의 배(Space-craft)나 비슷한 원칙 위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