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조종사와 직업병

by 너일론

| 조종사의 직업병


조종사라면 기본적으로 장착된 증세가 세 가지 있다.

불면증, 역류성 식도염, 소화불량이다.


매주 사는 시간대가 달라지고, 미처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비행을 나가는 일이 반복되면 생체리듬이 망가진다. 밤에 잠이 오지 않고, 길게 잘 수도 없어 낮에는 또 졸리는 일이 반복된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밤시간이 되면 졸리고, 실제로 해가 지면 또 졸리다. 하지면 역시 통잠을 자기는 어렵다.


그다음으로 빈번한 증세는 역류성 식도염과 소화불량이다. 장시간 근무할 때면 기내식은 보통 두 번을 먹게 된다. 미 동부에서 들어오는 날이면 하루 동안 다섯 끼를 먹게 된다. 교대 중 식사를 마치면 식곤증을 빌어 밀린 잠을 보충하게 되는데 이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향하는 특급열차에 올라타는 길이다.


허리는 종종 뻐근하고 귀는 조금씩 어두워진다. 오래 앉아 있고,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근무환경 탓이다.



| What Happened?


이러한 의학적 증세 말고도 직업병이 또 있다.


얼마 전 아내가 일하던 부엌에서 쿵 소리가 났다. “괜찮아?”가 나와야 할 타이밍에 건조하게도 “무슨 일이야?”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비상훈련 중 조종사들은 “What happened?”를 먼저 생각하는 훈련을 받는다.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취하는 조치는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를 먼저 묻게 되는데 집에서도 그 버릇이 나온 것이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조차 자꾸 상황을 파악하려 들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난 저녁, 아내에게 사과하며 이런 버릇과도 같은 병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부터는 “괜찮아?”를 먼저 묻기로 했다.


아직은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의 밈처럼 로봇연기 같지만, 그것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는 결코 아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