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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Jul 17. 2024

'네 아기가 죽었어'

외국 여행을 가서 도착하자마자 받은 문자에 가슴이 무너지다

'네 아기가 많이 아파.'

출국하기 전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당직을 함께 선 며칠 전, 심장에 큰 이상이 있는 아기가 태어났다.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와 수술실 안에서 기도삽관을 해 신생아중환자실로 보냈다. 그래도 상태가 나쁘지 않아 희망이 생겼다. 다만 아기의 상태에 관해 익히 들은 엄마와 아빠의 걱정스러운 아니, 절망에 가까운 얼굴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가기 전 날까지 상태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얼른 나아서 엄마 아빠 얼굴에도 희망이 피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가 그만 울고 웃었으면 좋겠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올렸다. 내 기도가 좀 더 힘이 있었으면 아기가 살았을까.


'네 아기가 어제 죽었어...'


친구의 문자에 내 가슴이 무너졌다. 한 밤중에 도착한 외국의 공항 그리고 시커먼 밤을 뚫고 가는 차 안에서 받은 문자를 보고 하마터면 차 안에서 엉엉 울 뻔했다.


짧은 문자가 내 가슴을 파고든다.

안타까운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불쌍한 아기의 알굴도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 가여운 아가! 많이 아팠을까?

잠시라도 엄마 아빠에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선물해 주고 갔을까?

앞으로 엄마와 아빠는 살아갈 수 있을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내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다음 날 아침에 피곤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서도 자꾸 떠올랐다.

아기와 가족.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니다. 아기와 가족이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그저 기도만 할 수 있었다.) 그 슬픔과 아픔을 안고 내 일상을 내 여행을 이어가는 게 맞는 걸까. 종종 고민했다. 가끔은 로밍한 나를 탓했다. 몰랐다면 오랜만에 한 이 여행이 아리고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다 이 죽음을 알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을 때 마주할 허망함과 미안함, 그리고 이를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을 여행 안의 나에 대한 미움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제 때 알아서 이 순간을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고 아기의 생을 추억해야 해. 아기를 기억해줘야 해.


'잠시나마 너를 치료한 내가 너를 기억하고 너의 가족을 기억함을 왠지 네가 알 것 같아. 아기야, 하늘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렴. 네가 엄마와 아빠를 지켜줘야 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기억해야 해.'


짧은 편지를 하늘로 부쳤다. 아무것도  모를 것만 같던 아기도 왠지 이제는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아, 여행 내내 하늘로 내 마음을 쏘아 보냈다. 저 멀리서 아파할 엄마와 아빠에게도 내 마음을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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