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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Jul 25. 2023

미국 대학병원에서도 라테타령

내가 꼰대가 될 줄이야

밀레니얼 의대생, 레지던트, 펠로우들과 일하기는 정말 어렵다. 나도 까다롭게 말하자면 엄연히 밀레니얼 세대 안에 들어가지만. 그들과는 다른 세대라고 믿고 싶다. 불평할지언정 내 일을 미루거나 감히 선배나 교수님께 대든 적은 없다. 앞에서는 늘 담담한 척 열심히 일했다. 교수가 되어도 나름 ‘신세대’라고 생각하며 쿨한 척 행동했다. (여기서부터 벌써 스멀스멀 꼰대의 냄새가 올라온다.)

몇천 년 전 그리스에서도 '요즘 애들은 말이야' 하면서 라테 타령했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필 적 이야기를 듣고도 '설마 내가 그러겠어' 했는데, 역시나 그러고 있다.


요즘 수련의들은 참을 수 없다. 아니 수련의들이 뭐든 참지 않는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피곤하면 당직을 서는 날이나 중요한 실습 기간에도 나오질 않는다. 볼 수라도 있으면 감사해야 할 판이다. 와서도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일이 힘들어지면 집에 가야 한다며 사라져 버린다. 내가 수련의 일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첫아이 임신 중 당직을 서다 혈당이 똑 떨어졌다. 두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집에 갈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환자용 사과 주스를 홀짝 대다 정신이 든 나는 여지없이 당직을 마쳤다. 다음 날 아침, 교수님과 회진까지 돌고 집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농담처럼 ‘내가 갑자기 쓰러져 죽지 않는 이상 출근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너무 아파서 일을 못 간 적도 있다.(라고 썼는데 도대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자주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팬데믹 전에도 감기에 자주 걸렸다. 걸리면 침대에서 24-48시간씩 움직이지 못하는 적도 많았다. (희한하게 당직 후에만 심하게 아프고 당직 전에는 조금 회복해 출근할 정도가 된다.) 요새도 병원에서 마스크를 쓴다. 어떤 병원은 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쓴다. 마스크를 쓴 후로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으니 괴롭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괴로움이 없어서 좋다. 아파도 출근하기 때문에 당직을 서면서 몸이 피곤하다. 그렇지만 내 몸의 고통과 싸우면서 일하는 정신이 더 피로하다.



하여튼 요새 수련의들은 좀 특별한 사람들이라, 아니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나도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열심히 일하세’ 같은 새마을 운동 정신이 뇌리에 박혀 워라밸을 중시하지 않는 중간 세대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동료부터 자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온 이민 1 세대 동료까지 다 나와 같은 생각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논하다 이제는 수련의 나이가 더 어려져 Gen Z라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따라갈 수도 없는 ‘신세대’가 점차 늘어나 나는 도태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미 몸에 밴 나만의 철학, 직업윤리를 이제는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르니. 이제 곧 나도 흰머리가 늘 것이고 새로운 수련의들은 매년 들어올 것이다. 나와 동료들은 계속 라테 타령을 하며 그들의 문화를 논할 것이다. 아마도 라테 타령은 죽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수련의들도 교수가 되고 라테 타령을 시전 할 것이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지금이나 몇 천년 전 그리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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