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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Sep 20. 2022

아기의 죽음은 추억이 없다.

생사의 경계에 선 아기들의 최종 보루, 신생아 중환자실 이야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4차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만 매일매일 일하고 당직을 한 달에 7-8번 아니 많게는 10번씩 서는 달이 늘어갔다. 일 년이 좀 넘어가자 내가 만진 죽음이 너무 많았다. 아기가 죽거나 죽을 뻔하거나 아직은 살아 있으나 곧 죽을 아기가 있는 당직 날과 밤이 시나브로 늘어가고 있었다. 사망선고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망 진단서를 쓰고 서명했다. 이제야 터질 것 같은 가슴이 가라앉았는데, 겨우 잊을만하면 신생아의 죽음에 익숙하지 않은 검사관에게 거부당한 사망진단서가 돌아왔다. 그와 시비를 가리고 다시 작성하는 동안 그 슬픔이 다시 올라왔다. 그 순간을 다시 사는 것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지금 당장 죽지는 않아도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아기의 부모님들과 무거운 대화를 거의 매일 나누었다. 가족들과 상담을 하는 동안 종종 내가 아기 부모님보다 많이 운 것 같았다. 가끔은 당직실에서 힘들었던 24시간이 지나고 인수인계를 마치면 엉엉 울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서 차에서,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다가, 또 자려고 침대에서 누워도 눈물이 계속 나왔다. 의도치 않게 가끔 내 아이 앞에서도 울었다. (지금도 큰 아이는 나와 내 남편의 대화를 대충 듣거나 내 표정만 보고도 오늘도 누가 많이 아프구나 아니면 죽었구나를 짐작한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태어나자마자 고통스럽게 죽은 아기들이 불쌍해서 울었고 그런 아기들 때문에 울부짖는 부모님 때문에 더 울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기들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혹시나 해서 살려 보려고 온갖 관과 바늘과 줄을 아기의 입에 목구멍에 배꼽 탯줄에 가슴에 배에 넣은 내가 미워서 울었다. 혹시나 나의 미숙함과 잘못된 판단으로 아기가 죽었을까봐 무서워서 울었다. 행여나 내가 그 작은 아기를 아프게 했을까봐 울었고 아기를 잃은 부모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해서 울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유 없는 눈물이 계속 나온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내 몸의 한 부분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러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가 없어지고 있었다. 나의 몸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실제의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자 그 조각난 내 자신이 다시 붙여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 마음의 지옥에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떠도 잠을 자도 그 아기의 목구멍이, 그 작은 가슴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이 눈앞에 있었다. 깨어 있으면 그 생각이 멈추질 않아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도 난 지옥에 있었다. 내 몸은 병원을 나와 집에 있는데 내 머리는 병원에 남아 그 과거를 계속해서 다시 살고 또 현재를 살고 있었다. 이따금 집에서도 실시간으로 아기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든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를 보고 또 보았다. 작은 오더 하나하나를 확인할 때도 있었다. 글을 쓰고 나면 내가 지옥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그 지옥들은 사라져 갔다. 내가 쓰는 활자들이 나를 떠나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의 적락운도 함께 가져갔다. 이제야 비가 멈추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글들이 모여서 신생아 중환자실 이야기가 알려지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신생아의 생사의 싸움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러길 바라지는 않지만 혹시나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그 사투를 치르게 된다면 이 글들을 읽은 다음에는 알길 바란다. 더 큰 사랑은 많이 아플 때 보내주는 용기이자 배려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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