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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Apr 09. 2023

미숙아 아기와 나


아마 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날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당직을 앞두고 예쁘게 단장한 손톱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니 조금 다듬어 더 깔끔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혹시나 죽음을 논하는 데 영롱하게 반짝이는 손톱이 보일 수는 없으니까.

 

알고 있었다. 작디작은 아기만을 돌보는 초미숙아실이 너무 많은, 너무 작은 아기들로 가득 찬 것을. 생각보다 더 악화된, 그러나 어제보다는 나은 아기들이 많았다. 짙은 염려가 내 얼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저녁 회진 전까지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혹시나 갈 수 있을지 몰라 놀이공원 예약까지 마쳤다. 친한 간호사들에게 내일 어마어마한 계획이 있다며 전화하지 말라며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산소 포화도가 잡히지 않아요.”

크리스가 지나가던 나를 잡았다.

“이상하네요. 다른 건 어때요?”

“괜찮긴 한데 뭔가 심상치 않아요.”

“다른 모니터로 바꿔보죠.”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앞으로 내 앞에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때 열린 지옥이 오랫동안 닫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기흉이 문제였다. 폐에 생긴 구멍으로 자꾸 폐와 가슴벽 사이에 공기가 차올랐다. 흉관을 두어 번이나 넣어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미 잘 자리 잡고 있는 흉관으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흉관은 우리가 하는 시술 중 가장 큰 고통을 초래한다. 다 큰 어른들도 받으면 비명을 지르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가져다준다. 이 작은 아기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원래 있던 흉관을 고쳐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얇디얇은 피부에 다시 소독약을 뿌리고, 흉관을 제거했다. 새로 흉관을 넣는데 웬일인지 자꾸 단단한 장벽에 부딪혔다. 겨우 성공하고 공기를 제거했다.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했을 때, 흉관이 아기의 가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간호사와 함께 석션에 연결하는 과정에서 손이 맞지 않았다.

 

함께 고생하며 같이 시술을 마친 의료진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차분히 새 흉관을 삽입하자, 아기는 몸부림쳤다. 많이 아팠으리라. 그 고통에 원래 있던 폐고혈압을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한번 굳게 닫혀버린 폐동맥은 열릴 줄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22주에 태어나, 살 확률도 살아갈 힘도 얼마 되지 않았던 아기는 부모님이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품에서 하늘로 떠났다.

 

가슴 안이 타들어갈 듯, 건조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사막에 숨어들어 홀로 숨죽여 울었다. 사막 안에서 모래바람이 위로 아래로 치솟아 나를 헤집어 놓았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나의 불찰 때문에 이미 벼랑 끝에 매달린 아기의 손을 끝까지 잡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내 마음도 모래로 덮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코로 입 안으로 모래가 들어와 나의 폐를 채워주기를 바랐다. 한밤 중에 눈을 떠서 드는 생각이, 눈앞에 있는 듯한 장면이 유리 파편 같이 내 가슴을 그어댔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고통이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암흑 아래, 사막 한가운데, 내가 홀로 서 있었다. 울음으로 세상의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당기는 자석같이 컴컴한 어두운 힘을 빨아 당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이 '반짝이는 순간들'을 아기의 부모에게서 앗아간 것 같아서 괴로웠다. 아이들과 행복한 내가 부끄러웠다. 머릿속의 새카만 밤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방학을 맞은 아이와 놀고 있다, 문득 든 생각에 조금의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아, 내가 이런 ‘반짝이는 순간들'을 많은 가족들에게 선물해 주었지…’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의 저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전미경은 통제할 수 없는 과거를 버리고 통제할 수 있는 현재에 모든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란 내가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편집한 기억의 조각이기에. 만약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다시 내 기억을 재생하다 차트를 찾아보는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 부족함 또는 순간의 실수, 아니면 불운의 영향으로 아기의 생을 연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나, 그 안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물론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해서 하나의 실수, 하나의 죽음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끝없이 자책하고 스스로를 암흑 안에 버려 놓는 것 또한 정상의 사고는 아니다.

 

몇 주가 지나고 아기의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없이 밝은 엄마의 목소리에 연거푸 감사를 표하는 그녀의 따스함에 어두움이 조금 더 걷혔다. 병원 로비에, 병원 기도실에 적어놓은 내 기도와 소망이 아기의 가족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기를, 또 내 자신에게도 평화를 허하기를 꿈꿔 본다.


photo credit: national ge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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