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May 04. 2023

마지막 순간, 혼자가 아니기를...

의사 가운을 벗고 한 사람으로, 한 엄마로 돌아와 부둥켜안고 울다.

“우리, 제발 그만해요.”

간호사가 내게 외쳤다. 벌써 세 번째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비해 차가운 말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심박수가 40~60 정도로 아직 심장이 뛰고 있어요. 심박수가 저리 낮은 데도 아기는 자가 호흡을 하고 있고, 종종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어요.”

서른 명이 넘는 의료진의 눈동자가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모두 다 알아요. 제이슨(가명)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요. 우리는 지금 가족에게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도록, 가족이 제이슨을 안고 보내줄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겁니다. 이의가 있으면 지금 말하세요.”

침묵이 이어졌다. 좌중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에피네프린 다시 투여하세요.  흡입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앰부백 짜주세요.”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심폐 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밤 다른 병원에서 온 제이슨의 상태는 좋은 편이었다. 1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심각한 상태에 빠지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혹시나 대사장애가 있는지 싶어 유전학과와의 협진을 위해 우리 병원으로 온 아주 작은 아기였다. 

간단한 피검사에서는 암모니아 수치가 300이 넘었다.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본 나는 알았다. 분명히 잘못된 결과라는 것을. 암모니아 검사는 피검사 튜브를 얼음 컵에 넣어 차가운 상태로 운반해 바로 검사를 해야만 정확하기 때문이다. 전원을 요청한 동료 의사를 설득했지만, 이미 세 번이나 피검사를 반복했다며 전원을 고집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전원에 동의한 나를, 쓸데없이 암모니아를 오더한 동료를 막아서고 싶다.

제이슨은 초미숙아로  1 킬로그램 조금 넘게 태어났다. 3일 사이 말린 스펀지 같이 쪼그라들어  1 킬로그램이 안 된 채로 나를 만났다. 언뜻 봐도 눈 사이가 멀고 납작하고 뭉툭한 코가 눈에 띄었다.  귀도 낮고 뒤로 살짝 돌아가 있었다. 양발에는 각각 여섯 개의 발가락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엉덩이에서 허리로 넘어가는 척추 부위에는 동전 크기만한 부위에 검은 털이 무성해 그 안에 숨겨진, 점같이 작은 구멍을 덮고 있었다. 다른 초미숙아처럼 혈액의 산성 수치가 꽤 높았다. 보통 신장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무슨 연유인지 동료 의사는 암모니아를 오더했다. 가끔 대사장애를 의심해 혈액 내 암모니아 수치를 재고, 아주 희귀한 대사장애를 진단하기도 한다. 제이슨의 경우는 이와 달랐는 데도 말이다. 결국 이 겸사 결과로 인해 제이슨은 우리 병원으로, 나에게로 왔다.


새벽 6시 30분, 병원 휴대폰이 요란하게 나를 깨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경과 마스크만 대충 걸치고 최고 속도로 달렸다. 병실에 들어서니 이미 10명이 넘는 의료진이 둘러싸여 있었다. 모니터를 보니 심박수는 바닥으로 치닫고 산소포화도는 읽히지도 않았다. 황급히 기도 삽관을 하니 겨우 심박수가 솟구치고 산소포화도도 올라오고 있었다. 한숨 돌리나 싶더니 다시 심박수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혹시 삽관 튜브가 빠졌나 싶어 그것부터 확인했다. 기도 속의 튜브가 하릴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가슴 압박과 투약이 이어졌다. 제이슨의 삶과 죽음 경계에서 힘든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제이슨의 부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이 직접 집까지 찾아갔으나 부모는 그곳에 없었다. 알고 보니 제이슨의 엄마는 아직 그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무엇보다 둘 다 차가 없어서 바로 올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시들어가는 제이슨을 붙잡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어디쯤 왔느냐고 묻자, 아직 출발조차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이슨은 이미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피가 입에서 코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작은 배 안에서도 피가 차올라, 심장 압박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유지하던 심박수가 이제는 희미해지고, 와야 할 부모는 오지 않고 있었다.

“사망시간, 8시 31분.”

간신히 뱉은 말이 병실 안을 채웠다. 간호사 사만사(가명)가 분수 물줄기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7시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피 튀기는 끔찍한 현장에 투입된 사만사는 방금 만난 아기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가슴 따듯한 사람이었다. 사만사가 제이슨을 가슴에 품었다. 우는 아기 어르듯 등을 가만히 토닥거렸다.

“아기가 불쌍해서 어떡해요.”

이미 떠난 아기를 달래며 흐느끼고 있었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두 시간 내내 내달렸던 나도 뜨거운 무언가가 단전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결국 병실 안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울기 시작했다. 전염병같이 퍼지는 슬픔의 몽우리가 곳곳에 피어 복도에서도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손을 벌려 아기를 건네받았다. 아직 식지 않은 아기의 온기가 내 손안에 퍼졌다. ‘제이슨, 엄마 아빠가 너에게 허락된 시간 안에 오지 못해 미안해. 너를 구해주지 못해 미안해.’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내 가슴을 타고 손길을 지나 제이슨에게 전해졌다. 한 시간쯤 지나 제이슨의 부모와 할머니, 이모가 도착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만해, 이제 다시 의사가 될 시간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넌 의사니까. 의사의 임무를 마쳐야지.’ 끊임없이 되뇌어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제이슨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도 알려주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저희가 함께 있었고 따뜻하게 안아서 보내주었어요. 제이슨은 죽는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 말을 마치고는 의사 가운을 벗어 한 사람으로, 한 엄마로 돌아와 제이슨의 엄마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어로 양적인 시간이라고 한다. 영원한 질적인 시간은 카이로스라고 한다. 오로지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지는 시간, 카이로스를 그렇게 경험했다. 제이슨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연기하려 온 힘을 쏟았다. 제이슨의 크로노스는 늘려주지 못했지만, 부족한 나에게도 조금 늦은 그의 가족에게도 카이로스는 찾아왔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749.html




매거진의 이전글 미숙아 아기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