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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May 31. 2023

올리비아는 세상에 없지만 있다.

한겨레 21 연재 중. 한겨레 21과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올리비아(가명)는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병원에서 유명한 아기였다. 선천적으로 횡격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장이 흉부 안으로 다 들어찬 가여운 아기. 가슴을 가득 채운 장은 생명에 가장 중요한 폐가 자라는 데 방해막이 된다. 올리비아의 작은 몸에는 선천적으로 비정상적인 장기가 정상적인 장기보다 많았다. 이런 경우, 의사는 부모와 상담을 통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임신을 중단할지, 또 태어나면 어떤 치료까지 동원해 살릴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보내주는 것을 택할지를 결정한다. 



올리비아의 부모는 강경했다. 무조건 올리비아를 살려달라고. 갑자기 새벽에 태어난 올리비아는 첫날 밤부터 고비였다. 폐 조직도 잘 자라지 않았지만 폐혈관도 정상이 아니었다. 밤새 산소공급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로도 며칠 동안 산소포화도가 고꾸라지고 혈압도 뚝뚝 떨어졌다. 많이 아픈 현재의 상태, 그리고 가깝고 먼 미래의 경과를 부모에게 설명해주어야 했다. 지금도 올리비아는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고. 더 힘들 미래,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깜깜한 색으로 그려줄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경과를 듣던 부모는 조각상처럼 얼굴과 몸이 점점 굳어져갔다.


“우리가 올리비아를 포기하는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부모의 목소리는 굳게 깔려 병실 안 무거운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포기’라는 말이 천근만근의 무게가 되어 내 가슴 위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올리비아는 수많은 수술과 소소한 시술을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아직도 흉관 삽입을 할 때 가늘게 떨리던 올리비아의 몸의 진동이 내 손끝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 진동은 두꺼운 멸균 장갑 두 겹을 지나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와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쭉 타고 올라왔다. 더 큰 진동으로 내 심장을 흔들었다. 난 올리비아가 너무 큰 고통을 그 작은 몸으로 받아낸다고 생각했다. 설사 이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다고 해도 그 끝은 분명 어두웠다. 그러나 나의 짧은 예측과는 달리 올리비아는 모든 고비를 씩씩하게 이겨냈다. 이제는 각종 헤어핀을 머리에 꽂을 정도로 숱이 제법 많아졌고 환하게 웃으며 재롱을 부리는 한 살 아기가 되었다. 아직 코에는 산소 줄이 달려있고, 전체적으로 발달이 늦지만 어떠하랴. 주변을 쨍하게 밝혀주는 귀여운 아기인데. 무수한 고비를 넘고 넘어 꿋꿋이 이겨낸 아기. 육아 휴직이 끝나 출근을 해야 하는 부모는 아기를 보기 위해 퇴근 후 매일같이 병실로 또 출근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의 예측대로 올리비아의 병환은 깊어졌다. 더 큰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할 만큼. 금새 웃으며 돌아올줄 알았는데,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더 복잡한 수술을 받은 뒤, 박테리아가 침투했고 올리비아의 작은 몸은 그 박테리아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우리 병원 의료진은 슬픔에 잠겼다. 올리비아의 퇴원식(우리는 ‘니큐 졸업식’이라고 부른다)을 성대하게 치룰 계획하고 있었다. 준비했던 졸업식 옷과 카드, 커다란 플래카드, 선물, 모두 다 우리의 희망과 함께 병원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뒤로 정든 올리비아의 엄마,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짧은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그들은 환자 가족 대표직를 맡아 굉장히 자주 병원을 찾았다. 회의나 행사가 있을 때면 더 자주 나타났다. 눈을 맞추고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늘 꼭 안아주었다. 병실 하나를 올리비아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환자 가족과는 절대 SNS 친구가 되지 않겠다는 의료진을 설득하여 친구가 되었고, 나와도 안부를 전하는 온라인, 오프라인 친구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SNS에 아기를 잃은 경험과 그에 따르는 슬픔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많은 이들과 나누었다. 올리비아의 개구진 얼굴이 담긴 사진을 안고 세계 여행을 떠난 사진도 곧잘 볼 수 있었다. 올리비아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올리비아 사진은 아직도 전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올리비아의 엄마가 SNS에 올린 글을 보면 아기를 잃은 엄마의 슬픔, 그리고 승화를 엿볼 수 있다. 


“… 매일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사냐고. 어떻게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세상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냐고. 올리비아를 잃은 후 변한 나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주 이상하지만, 지금의 내가 훨씬 좋다. 올리비아의 투쟁과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기에. 올리비아는 매 순간순간을 축제로 만드는 법, 작은 성과를 기뻐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인생은 짧고 예정된 것은 없다. 매순간 친절하고 사랑을 나눠라.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아기를 데리고 집에 가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아기와 교감을 나누고 병실에서는 추억을 만드는 엄마와 아빠. 긴 길 끝에서 소원을 성취하고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길 위에서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꼈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면 그 길 끝이 낭떠러지일지언정 어떠하랴. 내가 돌보는 아기가 결국 세상을 떠나더라도 잠시라도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면,  그래서 부모가 일분 일초를 더 의미있게 보냈다면 내 정성이 헛된 것이 아니듯이.


올리비아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생일 파티는 매년 열린다. 햄버거 집에서 즐거운 파티를 열고 그날 하루 나오는 수익은 모두 기부한다. 나는 올리비아의 가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차가운 몸으로 니큐를 떠나 앞으로의 삶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그 삶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교훈이, 또 현실적인 기부가 될 수 있음을. 그 유산이 살아 앞으로 있을 수많은 올리비아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올리비아는 계속 이 세상에 살아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867.html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3694.html?_ga=2.228397341.1876687677.1685482498-923339816.168548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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