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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나 Sep 18. 2018

5. 80년 된 먼지

옥천동 한옥집의 건축물대장상 사용승인일은 1936.10.10이다. 무려 82년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 사이 몇 명의 주인을 거치면서 벽은 덧바르고 나무 밑동은 썩고 보수하여 수리해 왔지만 한옥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87세의 전 주인 할머니는 1978년 이 집으로 이사 오신 후 세 자녀를 키워내시고 지금까지 혼자 집을 관리하고 계셨다.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그 이후 측량을 위해 몇 번 방문할 때면 타일 기단에 걸터 앉아 본인이 이사 온 이후 이 집의 수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동네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재미나게 들려주시곤 했다. 

  

“이 장독은 100년이 넘은 장독이여. 울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것을 내가 물려받은 것이여. 그런데 며느리들은 필요 없다 하니 이거 놔두고 가면 쓸 텐가?”    


내가 장을 담글 일은 아직 없었으나 주시면 고맙게 사용하겠다며 받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갖고 계시던 장독과 장식장을 남겨두고 가셨다.


할머니께서 남겨두고 가신 물건들. 다듬이돌과 오래된 나무 도마. 20180825



100년이 넘었다는 그 장독. 어떤 용도로든 살리고 싶다. 20180825



위 칸의 유리와 자개 비슷한 느낌의 문짝 모양이 버리기 아쉬워서 받긴 했는데 어디에 어떻게 리폼을 해야 할까. 20180825


할머니는 워낙 짐도 없으셨지만 이사 가시면서 화장실부터 부엌까지 말끔히 정리해 주셨기에 아이들과 하룻밤 자기에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한옥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집 상태를 좀 더 상세히 확인하고 견적을 내기 위하여 막혀있는 천장과 벽 일부를 철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생각보다 가려졌던 부분의 서까래 상태가 좋은 것 같다. 20180825



천장 철거를 위해 토요일 아침밥도 먹기 전에 나오신 철거업체 담당자. 20180825


“먼지도 오래된 거라 좋지 않아요.”

 

80년 묵은 먼지는 80년 세월을 간직하고 있으니 분자 구조부터 다른 것일까? 작업하시는 분이 천장을 뜯어내면서 멀찍이 떨어지라고 이야기하신다. 결국 우리는 작업 시작만 보고 집을 나왔다. 


시공사 실장님께서 작업 후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가려져 있던 서까래와 대들보를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고 우아하다. 

  

“건물 외부에 적벽돌 남아있는 쪽이 이음새가 다 떠있어서 바람이 엄청 들아왔었을 것 같아요”


아 할머니 혼자 추운 겨울을 어찌 보내셨을꼬. 상태가 좋다 해도 옛집은 옛집이다. 군데군데 구멍이 보인다. 그래도 나무들의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리가 좀 더 수월하지는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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