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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클라쓰>에서 '니체'를 만나다.

스르로를 극복해 진정한 나를 찾는 인생의 투쟁


"내 말했다. 오래 못기다린다고"
(시한부 선고를 받고 새로이로부터 '안돼, 당신은 나한테 망해야해'라는 연락이 오자 그에 대한 대답)

"오랜만에 개운해"
(역설적으로 자기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박새로이를 떠올리며)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바로 노예근성이야. 내 입맛에 맞게 길들여진거지. 그런 사람들 경멸하네.... 내 마지막 자네에 대한 감정이 경멸이면 되겠는가?"
(자신의 시한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오수아에게 죽을때가 되어서 왜 이런 말을하는지 모르겠다며 던지는 말)

이제 딱 2편 남아 다음주 종방을 앞둔 이태원클라쓰는 니체 철학을 깊이 파고들어 쓰여진 작품인것 같다.

니체는 초인화된 권력의지를 강조한다. (히틀러가 여기에 매우 감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가 말한 권력의지는 지배력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를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맞서 더 나은 진정 나다운 존재가 되기 위한 욕구로 보았다.

그는 그리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지를 극대화하는 길을 걷기를, 자신을 초극하는 길을 걷기를 추구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투쟁의 대상 혹은 라이벌이다. 니체는 증오할 만한 적을 찾아야지, 경멸할 만한 적을 찾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또 적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 인생이 고작 저런 존재를 이기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말인가?'라는 경멸 담긴 생각이 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얻었어도 비참한 인생이 될 뿐이다.



우리의 무릎 성애자, 장대희 회장은 '무릎을 꿇어. 그럼 살려주마'라고 언제나 박새로이를 위협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덤벼오는 박새로이를 신경쓰고 적으로 인정하면서부터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게되었는지도 모른다. 내심 박새로이가 무릎을 꿇고 경멸의 대상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드라마는 웹툰과 다른 어떤 결말이 될지 모르지만 웹툰에선 결국 장대희 회장이 패배를 인정하고 박새로이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순간 새로이는 니체가 말한 비극을 경험한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증오의 대상이자 자랑스러웠던 적이 무너져 내릴 때 오히려 자신의 여정에 대한 현타가 온다. 그래서 새로이는 장회장을 일으켜 세우며 한마디를 던졌다.


"보기 안좋습니다. 비즈니스 하시죠."

우리의 인생은 투쟁의 대상을 찾는다. 그것은 어떠한 사람일수도 있고, 집단이나 사회일수도 있으며 더 크게 잡는 사람이라면 시대적 고정관념이나 부조리일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가? 그것을 향한 내 목소리가 소신이고 나다움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니체와 이태원클라쓰는 사소한 것에 얽매여 시시한 싸움 밖에 하지 못하는 노예근성을 벗고 진정한 초인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날 것을 이 시대 청년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니체는 ‘초인’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염원했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그대가 희망과 사랑을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람이기를. 그대의 영혼 속에 깃든 고귀한 영웅을 절대 버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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