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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D 문화 브로셔 Dec 26. 2019

왕자 대신 가족을 찾는 신데렐라 이야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로맨틱 드라마에는 전형적인 전개가 있다. 연애 초반기에 일종 썸을 타는 단계에서 서로 연결될 듯 말 듯 엇갈리는 연출이 전형적인 전개 방식인데 이 드라마도 역시 이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실 이 드라마가 초반에 히트를 하고 사람들이 재미있게 빠져든 부분의 주요 요소는 바로 이러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적 부분에 있다 하겠다. 썸의 단계에서는 긴장감이 재미를 주는 요소인 것에 더불어 자신에게 전적으로 바쳐지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 여성들이 이 드라마에 빠지게 한 또 하나의 요소이다. 물론 이 요소 또한 여타의 로맨틱 드라마에서는 전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의 장르적 요소에 있어서는 해당 장르의 기본적인 방법론을 별로 벗어나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그것의 연출에 있어서 매우 효과적인 재미를 잘 만들어냈다 하겠다.

출처: KBS 드라마 홈페이지

여기서 하나 더 살펴볼 점은 이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에 고착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종의 혼종 현상이 있다는 것인데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결합시켰다. 사실 두 장르가 동일한 무게로 접합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고 메인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인 것인데 그러한 로맨틱한 부분의 감동의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배경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적 상황을 깔아놓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미스터리적 요소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또 하나의 재미를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기본적인 드라마의 스토리 구조는 전형적이진 않더라도 신데렐라 스토리다. 억압받고 고통받는 낮고 평범한 지위의 여자가 상위의 남자에게 구원받는 스토리 바로 그 익숙한 스토리다. 신데렐라 스토리로 구성된 한국 드라마야 매년 몇 편씩 나오고 있는 매우 평이하고도 대중적인 스토리다. 보아야 할 점은 과거의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와 지금의 이 드라마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매우 익숙하게 보게 되는 캐릭터가 있다. 재벌 2세 또는 유망한 기업의 실장 뭐 그런 거다. 신데렐라를 구원해줄 왕자 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그러한 왕자의 특별한 지위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이러한 왕자의 상황이 다르다. 아주 평범한 서민인 지방의 하급 경찰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욕망에 근거한 내용이다. 지금은 비루한 처지이지만 누군가 왕자님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나의 지위와 상황이 급변하길 바라는 욕망이다. 비록 현실성 없는 꿈같은 얘기지만 판타지로서 가져볼 만한 그런 욕망 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왕자를 욕망하는 판타지가 없다. 이 드라마에서 왕자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아이의 친부일 텐데 여주인공의 대상은 그리로 향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캐릭터의 배정에 있어서 그러한 왕자의 캐릭터에게 여주인공이 향하지 않도록 한 설정은 지금 이 시대에서는 그러한 급격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알게 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계층 이동의 꿈이 사라진 사회가 이 드라마가 신데렐라에서 왕자를 지우게 된 배경이다.     


이제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메인 주제를 살펴보자. 애초에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여주인공이 가족과 같은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주 메시지로 잡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실 가족애는 너무나도 진부한 소재이지만 그만큼 가장 보편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코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사회의 공동체성은 파괴되어 왔고,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의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답으로 결국 아직까지는 남아있는 가족 공동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코드가 애국심과 가족애이기도 하다. 가족애는 인간의 근본적인 애정을 주고받아야 하는 속성을 만족시킬 바람직한 가치이기도 한 반면에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에 고착시키는 반작용도 있다. 전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각종 부정부패가 가족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흔하게 보게 된다. 최근의 정치계에서의 부당한 현상들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과다한 가족애에서 발생한 것이다. 공정함과 정의의 가치를 줄곧 올바르게 세워두지 않으면 가족애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는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에서 발산되는 어떠한 메시지가 가족애라는 것에 치우쳐져 있을 때 사회 전반에서 일반화되는 가치관이 가족 이기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출처: KBS 드라마 홈페이지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보기를 바라고 어떠한 것을 보기를 불편해하는가는 시대적 배경과 흐름 속에서 판단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의 발전 속도를 가지고 나아왔던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희망이 넘쳤던 시기이다. 모두가 좀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 믿으며 점차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한 희망적 시대에서는 밝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보고 싶은 모습이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보다는 잘 나가는 부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더 좋아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바라는 것들이 실현된 모습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희망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IMF 이후 경제 발전의 속도가 더뎌지고 사회의 빈부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고착화되어 감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갔다. 사회의 강고하게 고착화된 빈부격차의 틀이 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점차 강하게 체감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지금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위로라도 바라게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잘 나가는 부자들의 모습들은 질시하게 되고 같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에 대한 위로가 되는 내용을 보고 싶게 된 것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드라마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게 되는가 또한 시대적 배경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이번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의 대히트라는 현상 속에서 보게 되는 이 시대의 암울한 현실이 입맛을 씁쓸하게는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보는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즐겁고 행복했지 않은가.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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