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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손 K중령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인생의 동반자이자 전우입니다. "

by 이형걸

내 후배 K의 전역 계급은 중령. 군복 입고 살아온 세월이 근 삼십 년이 다. 사관 출신이니 묻고 따질 것도 없는 정통 군인 중의 군인이다. 그런 그가 전역 후, 머리카락을 다듬는 사람, 이발사, 요즘 말로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연락이 왔다.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친화력이 있었지만 전역 후 ‘총’ 대신 ‘가위’를 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머리카락은 말이죠, 사람 몸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부위죠.”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2~3달에 한 번씩이라도 모발을 관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60세를 넘으면 숱이 달라진다고 강조에 강조를 더한다. 성경 속 ‘삼손의 머리카락’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머리카락이야 말로 남자의 자존과 의지라고 주장했다. 삼십 년 동안 그는 군대 속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수행했고, 전역 후에는 헤어디자인이라는 섬세한 작업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K는 군출신이 인생 이모작으로 선택하기에 쉽지 않은 헤어 디자이너를 어떻게 선택하게 됐을까, 무엇보다도 이게 궁금했다.


“인생은 알 수 없 다.”

그의 답변이다. 본인도 이 길을 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바리스타가 목표였는데, 우연히 이발하다가 이발도사(?)를 만났고, 그 도사의 꾐(?)에 빠져 스승으로 모시고, 기술을 익힌 후 자격증을 획득하고, 자신의 숍을 열어 오늘까지 왔다고 한다. 현재 6년 차로 접어들었는데, 매번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기가 사장이니까 매출에 대해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것이 맘에 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발비를 내면 그걸로 일 마치고 퇴근하면서 치맥이라든지, 냉면이라든지, 파전에 막걸리를 낸다.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걸림돌(?)인 것 같다. 그의 숍이 ‘서울 마포’에 있으니 그럴만하지 않겠 는가. 그는 이게 사는 재미라고 했고, 나는 이게 미안해서 이발하러 갈 때는 빵이나 간식을 사가지고 간다. 더 재밌는 것은 5일 근무를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그래야 지치지 안 고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사업철학이다. 사장인 그는 여름 겨울 휴가도 반드시 실시한다. 그것도 휴일 이틀에 붙여서 장기 휴무로 여행을 간다. “괜찮아?”라고 물으면 단골 고객은 기다려준다고 하니 할 말 없다. 하지만, 최근 물가도 오르고 임대료, 관리비, 공과금 등 모든 게 올라서 고민이라고 했다. 이발비를 올리려고 했지만, 학생하고 어르신이 많아서 쉽지 않은 모양새이다.


가끔 그의 뒤통수를 바라볼 때면 문득 영화 <가위손>이 떠오른다. 인공의 손에 가위를 단 채 태어난 소년, 에드워드. 가위 날이 선 손때문에 사람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손 끝에서 피어난 조각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담장을 장미로 휘감고, 얼음을 예술로 깎아내던 그 손길. 그것은 비록 상처를 줄 수 있는 날이었으나, 동시에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날이기도 했다. K중령의 가위손은 머뭇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지나간다. 내가 그에게 소중한 머리를 내맡겼던 초기에는 긴장 탓인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 가 있었다. 지금은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준다. 손놀림이 가볍다. 나는 그의 손과 가위가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내 머리를 조각하고 있음을 느 낀다. 이제 가위는 단지 머리카락을 자르는 도구가 아니다. 그 손끝에서 누군가는 젊음을 되찾고, 누군가는 자존심을 회복한다. 머리숱이 비어 가는 남자들에게, 중년의 나이 듦에 저항하고 싶은 이들에게 그는 매번 묻는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시나요?”




가위손은 모발 뿌리부터 살펴본다. 모발의 방향, 이마의 각도, 귀와 턱의 간격까지 읽어낸다. 얇고 힘없는 머리엔 뿌리 볼륨 펌을 얹고, 퍼지는 옆머리는 눌러준다. 다운 펌이다. 파마 약을 바르고 나면 타이머를 누른다. 정확한 시간의 양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다. 레시피가 명확하다. 때론 가르마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라 보이게 만든다. 가위가 지나간 자리엔 낡은 시간이 정리되고, 흩어진 머리가 정리되고, 거울 속 사람은 미소를 짓는다. 내 머리스타일은 윗머리에 펌을 더한 댄디 스타일이다. 속칭 속알머리가 없다는 식의 말처럼 윗머리카락의 모발이 얇아지고 있어 힘이 없으므로 펌을 해서 볼륨감을 준다는 것이다.


가위손이 만든 필자 헤어스타일 .. 서울50+ 시민기자시절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다.


중년이 되면 골격근이 약해지듯이 모발의 힘도 약해지고 모근도 막힌다. 스트레스의 영향도 있고, 노화의 현상이기도 하다.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사람은 늙기 마련이지만, 노력하면 멋지게 늙을 수 있어요.”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건, 그가 이미 그렇게 살 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헤어숍이라는 작고 조용한 전장에서, 탈모의 위협을 막고 스타일과 대결을 벌이는 전직 중령이다. 두피 마사지는 혈류를 흐르게 하고, 샴푸는 반드시 미온수로 하며, 트리트먼트는 귀찮아도 꼭 발라야 한다고 말한다. 아침마다 머리숱을 세는 중년 남성에게 그는 진심으로 충고한다.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이 인생의 동반자이 다.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그는 이제 한 사람의 스타일리스트이고, 삶의 선배이며, 멘토다. 스타일링을 하며 그는 손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탈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어느덧 N차 방문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반 이상은 예약손님이다. 신촌의 대학교가 가까이 있어 젊은 층이 많기도 하고, 남성 사장이 운영하는 헤어숍이라 동네 어르신 손님이 많다. 특히 젊은 층에는 어학당에 다니고 기숙사에 머물러 있는 외국 청년들이 많이 온다. 일본, 베트남, 튀르끼에 친구가 있다. K중령의 가위손은 군대에서의 단호한 훈련, 오랜 세월 속 질서와 명령의 세계를 지나온 손이었지만, 지금은 그 손이 고객의 텅 빈 두피를 엄호하고, 스타일을 보태, 거울을 마주한 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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