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공 영원한 이름

공군사관학교 제32기 생도 임관 40주년에 부쳐

by 이형걸

벽공, 기약하고 기원하자. - '벽공'은 공군사관생도 제32기의 별칭이다. 사관생도들은 각 기수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독특한 별칭을 갖는다. 나는 벽공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벽공은 1980년 입교하여 1984년 졸업하고 공군소위로 임관하였다. 지난 해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 소식지인 <성무>지에 게재한 글을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내놓는다.


1980년, 그해 겨울 2월은 무척이나 추웠다. 서울 대방동 성무대 언덕을 넘어갈 때 선배들은 박수치면서, 응원했다. “한 달만 참아라!”고. 3월 입학식 날 여전히 추웠다. 엄마는 겨울 햇살에 까맣게 그을린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안아주었다. 면회실에서 나는 김밥, 갈비, 잡채를 그저 먹기만 했다. 한 달 동안 처음 겪은 일이 너무 많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 달만 참아서는 안되고, 그 후로 오랫동안 참아야 한다는 것을. 생도 생활하는 병동 옥상에서, 공부하는 학과장에서, 훈련받는 새마을연병장에서. 우린 199명이 함께 입교했고, 4년 후 169명이 함께 졸업했다. 장교가 되었다. 술, 담배, 여성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자유’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나 깨달았다. ‘자유’란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고, 자유를 찾을수록 굴레에 더 갖혀 있게 된다는 것을. 성과를 내기 위한 참모의 책상에서, 부하를 거느리는 지휘관의 모자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선배답게 행동해야 하는 인격에서.


2024년, 6월 올해는 여름이 일찍 찾아왔다. 마음의 본향, 서울 대방동이 아닌 충남 청주 쌍수리 성무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제는 후배들이 박수치면서 환대했다. 임관 40주년이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스쳐 지나갈 수가 있도록 만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까 신의 뜻일까 궁금하다. 대연병장 전광판에 비춰진 생도 시절의 빛바랜 사진을 본다. 멀리 사관생도 예모의 깃털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40년 전 저 생도 대열 속에 있었던 나를 회상한다. 군악대의 축하공연, 교장의 인사말. 칼 각을 유지한 블랙이글즈가 머리 위로 곡예하듯이 날아간다. 생도대 생활관을 둘러봤다. 그 시절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런 책상, 침대, 캐비넷, 중대 휴게실. 내 젊은 날, 별처럼 찬란한 청춘을 고스란히 부어 넣었던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공군.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목젖 아래서 꿈틀거린다. 짧은 순간, 울컥 올라온다.


여전히 소년 같은 눈빛과 마음을 간직한 동기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비행과 업무 중 순직하여 호국의 별이 된 동기들을 기억했다. 지금, 공사 32기 벽공 163명 모두는 공군을 떠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깨 위의 반짝이는 계급장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명예롭게 살아온 각자의 40년을 아름답게 간직해 왔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고, 앞으로를 그려본다. 지난 40년 여정을 함께한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할 사람은 분명 아내일 것이고, 또 손에 꼽는다면 사관학교 동기 아닐까. 남편의 군 생활을 곁에서 묵묵히 내조해 온 아내, 가족의 사랑과 헌신은 앞으로의 40년을 품어줄 울타리다. 그리고 벽공, 우리는 꿈과 땀과 열정을 공유한 공동체이며, 청춘을 군에 바친 전우이자, 정의로운 일에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단단한 친구이다. 앞으로 우정을 함께 나눌 영원한 동반자이다.


벽공이여, 기약하고 기원하자.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자. 공군사관학교가 맺어준 우정과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10년 후 50주년 행사를 이 모습 그대로 만나기를 약속하자. 그래서, 다시 40년 후를 기약하자. 그리고 기원한다. 벽공 모두의 건강을. 무쇠처럼 강한 그대를.

패기, 신념, 정열, 극복! 32기 화이팅! 그때까지 무사히, 건강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자(父子) 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