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다시 살게 된 건 15살 때였다. 더 이상 매일 라면만 먹는 생활은 안 해도 되고, 다른 아이들처럼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엄마가 반겨주겠지 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도 자식만 보겠지. 그러나 친엄마는 내 바램을 모조리 꿈 깨듯 깨버렸다.
‘엄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차라리 다시 혼자가 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엄마는 함께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이가 어린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삼촌이라 부르게 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김동호였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 게 보였지만 집착이 심해 보였다.
엄마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화장대 거울을 부시고, 집에 불을 질러버린다는 협박으로 엄마를 통제하려 했다. 그 삼촌은 얼마가지 않아 우리가 보는 앞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감방으로 들어갔다.
김동호 삼촌이 가버린 자리엔 금방 새로운 삼촌이 들어와 살았다. 새 삼촌의 이름은 김동하. 엄마보다 역시나 나이 어린 사업가였다. 하필 사춘기라 예민할 때 불쑥 찾아온 이 남성은 괜히 싫었다. 어색하고 불편한 걸 넘어서버렸다. 엄마가 나 말고 이 사람에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의지하며 바라보는 게 싫었다. 나는 엄마만 있으면 되는데 엄마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버렸다. 엄마도 김동하도 모두 싫었다. 빨랫대에 걸린 삼촌의 팬티가 보이면 창문 밖으로 모조리 던져 버렸다. 학교에 다녀오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삼촌에게 인사도 않고 방에 들어갔다.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편했다. 그걸 보며 삼촌은 대놓고 말했다. ‘쟤 나중에 사회생활 못 할 것 같아’ 예민하고 내성적인 나의 성격을 문제 삼아 엄마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로 엄마는 내가 짜증을 내거나 방문을 닫고 들어갈 때면 삼촌처럼 똑같이 말했다.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고. 내 증오는 점점 불어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죽어 벼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
어느 날 새벽에는 잠을 자다가 창문너머로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우는 소리와 남자가 화를 내는 소리였다. 가만히 들으며 다시 자려다가 설마 우리 엄마 소리는 아니겠지 했다. 곧이어 설마가 눈앞에 나타났다. 현관문을 들어온 엄마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손가락은 가위 같은 것에 잘려 피가 흘렀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김동하 짓이었다. 다른 하루는 안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은 이랬다. 헤어지면 성관계한 동영상을 온라인에 뿌리겠다는 김동하의 협박이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열린 안방문으로 엄마와 김동하가 성관계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지만
그걸 촬영해서 엄마를 협박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15살 때였다. 언제 다 살지, 언제쯤이면 죽을 수 있지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게. 엄마가 너무 밉고 싫어서 복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망가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심성이 되지 못한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잘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어두워졌다.
엄마가 없을 때 보다, 함께 있을 때 더욱 혼자가 됐다. 외삼촌이나 고모는 하나같이 말했다.
자식을 왜 병신으로 만드냐고. 애들이 짐이냐고. 이리저리 엄마 아빠 삶에 따라 옮겨 살게 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