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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Jul 31. 2024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0] 들꽃처럼

  


"딸을 참 들꽃 같이 키우셨네요."


   엄마와 떠난 산티아고에서 참 좋은 말을 들었다. 들꽃처럼 키웠다는 말이 아프고도 고마웠다. 나는 늘 자유롭고 싶기에 여전히 들꽃 같은 아이로 평생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피어있는 무수히 많은 들꽃처럼 나는 어디에나 있었다. 지금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느껴졌다. 어느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엄마 덕분에 해맑고 환한 웃음을 다시 되찾았고, 내 안의 어둠도 누룰 수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들꽃이 지천에 있던 산티아고 길이 그립다.


  장장 800km. 스무살 때부터 산티아고를 가고 싶었다. 결국 난 그 길을 걸었다.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았지만, 몸이 이끄는대로 걷고 울고 웃다보니 하루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든 말든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주는 엄청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오순도순 살고 싶다. 평생 함께 해주길 바랬던 사람에게 버림 받고 그를 버리고 들판에 다시 내던져졌다. 나는 오히려 이 곳이 더 편안하다. 꽃이 가득 핀 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관계를 주선하는 일도 소박하게 단순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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