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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Dec 24. 2020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인생을 여전히 흔드는 대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이다. 공자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와 같이 딱 아는 만큼만 실천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인정되는 세상이라면 참 좋으련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을 때, ‘너 그것도 몰라?’라고 되묻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건 당연히 상대도 알고 있으리라는 무의식이 단단히 깔려있는 것 같다. 또한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감이 없다. 솔직하지 못하기에 거짓이 많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안다고 나서고 싶을 때 ‘이건 제대로 아는 게 아니야’ 하고서 자기 검열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인지적 능력보단 도덕적 능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8시 4분, 지하철 환승구간.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그 누구보다 익숙하지만 그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무섭게도 그들에 대해 ‘추측’한다. 단지 짧은 순간 스쳐가는 사이일 뿐인데도, 그들이 입은 옷, 표정 등 외적인 부분만 보고서는 그들에게 성격을 부여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이 어떻게 실제로 행동할지 전혀 모르면서 ‘꼬리표’를 만드는 내가 싫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쉽게 알아본다‘거나 ’한번만 봐도 안다‘라고 하는 건 오랫동안 쌓인 경험이라기보다 편견이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버릇이 다들 있는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남 얘기를 쉽게 하고 자기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체 한다. 딱 아는 만큼만 말하고 살면 좋을텐데,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자기도 잘 모르면서 똥폼 잡는 것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삶에 함부로 점수는 매기는 것들. 딱 그것만큼의 판단의 잣대라는 것. 얄팍한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통념 내지 편견이라는 것을 알 때 화가 난다. 무엇보다 나도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괴로운 마음만 커져간다.


  말도 안되는 일로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는 사람을 재수 없게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이제는 바보 같아 보이거나 오해를 당하기 싫어, 차라리 꽁꽁 감추고 닫아두는 편이 낫겠다 싶다. 딱 아는만큼만 말하려고 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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