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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Nov 14. 2021

진심인지 아닌지는 눈을 보면 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 우리 할머니는 할머니인데, 복지관에서는 '어르신'이다. 그런데 '할머니' 같은 어르신이 있다. 그러면 안되는데, 괜시리 전화를 더 하고 싶은 어르신이다. 안부전화를 하면 나의 안부도 같이 물어주고 어쩜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그리 명확하게 하는지 신기해서 손뼉이 자동으로 쳐진다. 하지만 꼭 이런 이유만은 아니다. 어르신과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니 이 곳에 기록해본다.



첫번째 만남

  담당자가 변경되었다며 인사를 하러 갔다. 뭘 물어보러 간 건 아니었고 진짜 인사만 하러 갔다. 내가 일하는 복지관과 업무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누고 그냥 수다나 떨고 오고 싶었다. 처음부터 호구조사하는 건 나도 싫었다. 딱히 먼저 궁금한 것도 없었다. 만나다보면 궁금한 게 생기겠거니 했다.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이 집에 살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도 내가 뭘 해야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으니 물어보기 그랬다. 사실 내가 꼭 물어봐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마음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고간게 신기하고 운이 너무 좋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첫번째 만남 후에 궁금한 것들이 잔뜩 생겨버렸다.


두번재 만남

  안부전화를 하며 어르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정말 이 어르신이 궁금해진다. 한달만에 어르신을 만나러 갔다. 헛헛하게 무심히 쌓아온 외로움들, 나이듦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셨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을 겪으며 느꼈던 점을 이야기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자네, 할머니가 있는가? 할머니한테 전화 몇 번이나 하나?"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왜 물어봤냐면....."

 

  수많은 이들에게 수없이 반복했던 이야기들,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태도에서 서로 다른 진심의 온도차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온 몸을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고, 한편으로 시원하기도 했다. 집에 잘하지도 못하면서 내가 무슨 사회복지사를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사자를 대하는 사회복지사의 자세를 생각해보았다. 

  어르신은 사회복지하는 사람들 중에 일을 하다보면 힘이 들 때도 있고 자기들도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란 걸 알지만,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진심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오고가는 대화, 취조하듯 묻기 등.... 맞는 말이었다. 이 일은 내 진심이 중요한 일, 당사자가 정말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메쏘드 연기를 하는 게 하라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지. 사람을.... 진심으로"

  "그걸 어떻게 아세요?"

  " 진심인지 아닌지는 눈을 보면 알지~"

  " 그럼 저는요?"

  " 자네는 진심이야. 너무 순진해. 느껴져. 순진해서 세상 어떻게 살라 그래?"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며 나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을 만날 땐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정확하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명확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기나 한 건지,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본질적으로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림인지 생각해보고 앉았다. 이전에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이 더할수록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변해간다. 사람답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데, 나는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람답게'의 의미를 정리하지도 못했다. 

  자기 일의 개념이 명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당사자가 잘 되길 바라는 진심은 있다. 하지만 '진심'을 어떻게 보여줄건지 생각하기, 내 진심이 오염되지 않도록 잘 보관하기, 이 두 가지만 하는 것도 지금은 좀 힘들다. 

  

  (사람이 잘못되길 바라는 건 정말 큰 맘 먹고 하는 일이다....)


  짐 정리를 하다 그동안 찍었던 증명사진들을 일렬로 펼쳐보았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뭘 몰라서 초롱초롱한 것 같기도 하다. '가능성'에 설레었던 시간들, 무엇이라도 다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가득한 그런 눈빛이다. 지금 거울을 보니 눈에 힘이 없다. 눈빛이 흐려진다. 이러다 내 진심도 흐려지면 어떡하지?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다음에 어르신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르신, 오늘도 제 진심이 느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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