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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박사과정 1학기 개강 2주 차의 소회

by Hee

어느덧 박사과정 개강을 한 지 2주가 지났다.

호기롭게 12학점(전공 9학점, 타 전공 3학점) 신청했던 과거의 나.. 첫째 주 다녀보고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싶어 타 전공 수업은 수강취소했다.


첫 토요일 수업이 있었던 날은 여유롭게 일찍 가서 학교 구경을 했다. 계속 놔두는 건진 모르겠는데 대왕스누베어 발견


법학도서관도 구경만 해보았다. 옛 법학도서관 입구를 그대로 살려 증축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은 3월 1주 차 주말 아침부터 열람실 나오려나 싶어 두근두근하며 살짝 훔쳐봤는데 그렇지는 않더라 ㅎㅎ 그러는 너는 로스쿨 때 그랬냐만은..


수업은 17동 건물에서 진행했다. 교수님 왈 "지난 학기에 줌(zoom) 수업을 열어달라는 강의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러분처럼 전업 학생이 아닌 경우에 줌 수업만 들으면 자신이 학생이라는 자각을 하기가 어렵다. 비록 와서 도서관 건물 구경만 하고 갈지라도(이 말씀하실 때 뜨끔) 학교에 와보기도 하고,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랑 잡담이라도 하면서 소속감도 느끼고 해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고 하셨다.


100프로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공간과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업을 방에서 편한 옷 입고 듣는 것과 강의실에서 듣는 것은 집중력과 전달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줌 수업을 들을 땐 수업 내용 텍스트만 전달되지만,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면 교수님의 바디 랭귀지와 집중하는 학우들의 표정을 포함한 전체적인 컨텍스트 속에서 텍스트가 전달된다.


수업 끝나고는 학생회관에 위치한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6,500원인데 학생/교직원이면 1,000원 할인된다. 돈까스 위에 얹어진 저 조랭이떡이 너무나 학관밥스럽다. 같은 비용으로 최대한 열량을 뽑으려는 것 같은데 국에 들어간 것만 봤지 돈까스 위에 얹은 건 처음 본다. 창.. 창의적이야! 치킨돈까스가 매우 실해서 감동이었다.


교보문고에서 교과서랑 학용품 겸 굿즈도 구매. 스누베어 캐릭터 참 잘 뽑았다. 눈 돌아가서 이것저것 막 사려다 참음


그래도 줌 수업이 편하긴 해요 교..교수님(?)


왜냐면 평일 저녁 대면강의가 있는 날엔 저녁 먹을 시간도 없그등요.. 먹을 시간 없으면 좀 안 먹으면 다이어트도 되고 좋을 텐데 당 떨어지면 우울해지는 타입이라 운전하면서 샌드위치 흡입


와중에 제주도 출장도 다녀왔다. 예상치 못하게 기일 속행되어서 4월에 다시 가야 하게 되었다.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은 사건이고 이렇게 길게 갈 사건이 아닌데 의뢰인 마음이 참 힘들 것 같다. 변경 전 재판부에서는 제주도는 사건이 많다면서 다음 기일을 막 3-4개월 후에 잡아주시곤 했는데, 다행히 지금 재판부는 다음 기일도 빨리 잡아 주셨고 해당 기일에는 종결하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수업 예습을 전혀 못 해서 비행기에서라도 읽어보겠다며 무거운 교과서 들고 감..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요란이라던데


어제는 수업 듣고 중앙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리고 세미나도 들었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캠퍼스가 더 예뻐질 것 같아 기대된다.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게 쉽지 않을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역시 매운맛이다. 일도 잘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는 나를 꿈꿨지만 일은 조금씩 밀렸고, 수업은 예습은커녕 허겁지겁 뛰어가 졸지 않으려고 기를 쓰다 끝나기 일쑤다.


그런데, 참 힘든데 즐겁다. 이 시간과 기회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20대 때 학교를 다니면서는 진정한 배움은 교실이 아닌 학교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 과제, 시험은 버거운 의무로만 느껴졌고 진짜 배움은 여행, 아르바이트, 친구들/선배들과의 술자리 대화, 연애 같은 것에 있다고 믿었다.


30대가 되어 다시 학교를 다녀보니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학교 내에 있는 동상과 그 밑에 쓰인 글귀, 게시판에 붙은 각종 세미나와 행사 대자보도 유심히 읽어본다.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배움의 기회를 학교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학 때 내게 넘치게 주어졌었던 것 같은 자유가 놀고 술 마시라고 주어졌던 게 아니라 배움을 위한 것임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하도 넓고 복잡해서 그런지 바닥에 이렇게 길 안내가 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학부생으로 서울대학교에 왔었다면 아마 이것도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지금은 20대만큼 넘치는 시간은 없지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배워보려는 마음가짐은 있으니 이거면 됐다 싶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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