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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교수님의 3가지 조언

by Hee

국제재판연구를 가르치시는 교수님께서 수업 후 점심식사를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셨다. 70대에 접어드셨음에도 학생들보다도 더 수업에 진지하시고 열정적으로 임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 깊다고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식사자리에는 나 외에도 2명의 박사과정생과 1명의 석사과정생이 함께 했다. 우리는 서울대 안에 있는 BBQ에 자리를 잡고(원래 가려던 한식당이 문 닫음 이슈), 피자를 나눠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자리가 무르익자 학생들은 하나씩 고민을 꺼낸다. 다들 나처럼 아직까지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노(老) 교수님으로부터 고민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조언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모였나 보다.


인생의 진리가 늘 그렇듯 교수님의 조언은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원칙들이었지만, 그 원칙들을 실천했을 때 실제로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본인의 인생경험을 함께 들려주시니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원칙들을 아직까지도 꾸준히 실천하고 계시다는 점도 존경스러웠다.


교수님의 조언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메모하라


교수님은 늘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셨다. 좋은 아이디어나 생각이 떠올라도 당장 글로 이를 붙잡아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다소 다른 결이긴 하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서 인용 결정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가 홍장원 국정원 1 차장의 체포 명단이었던 것이 오버랩된다. 만약 홍장원 차장이 전화로 체포 명단을 듣기만 하고 메모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증언의 신빙성은 훨씬 더 떨어졌을 것이다. 특히 전화하면서 명단을 받아 적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원에게 정서를 해보라고 한 부분이 더욱 인상 깊다. 타인에게 정서를 해보라고 함으로써 본인의 증언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람과 물증을 더 확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명단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정리된 기록으로 남겨볼 필요가 있었다는, 즉 체포명단을 만드는 상황이 매우 비정상적이었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었다.


마침 어제 김영하 작가의 신작 <단 한 번의 삶>을 주문했더니 사은품으로 미도리 노트를 주었다. 작가 또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라고 했다. 역시 대가들은 다 통하나 보다.


김영하 작가의 신작 사은품으로 받은 미도리 노트


2. 종이 신문을 읽어라

교수님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종이 신문을 읽는 것이라고 하셨다. 종이 신문에는 인터넷 포털 뉴스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정보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핸드폰으로 네이버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뜨끔), 편집된 네이버 뉴스 메인기사를 봐도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어떠한지 직접 검색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도 하셨다.


매일 신문을 읽다 보면 반복되는 주요 내용들이 있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어제에 비해 업데이트된 부분, 혹은 제목을 봤을 때 자신의 흥미를 끄는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니 꼭 종이 신문을 두 종류 정도 구독해 볼 것을 권유하셨다.


실천력 빼면 시체인 나는 점심 자리가 파하자마자 교수님이 보신다는 신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료 구독체험을 신청했다.



3. 매일 운동하라

내가 제일 교수님께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그 연세에 활력과 에너지를 유지하실 수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은 다소 허무하게도(?) 매일 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6시에 헬스장에 도착하여 1시간 정도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하신단다. 무조건이고, 빼먹는 일은 없다고 하셨다. 다들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우선 운동을 하루의 1순위로 정한 후 나머지 일들은 남은 시간 내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매일 헬스장을 갈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 방법으로 '비싼 헬스장을 끊을 것'도 조언해 주셨다. 하하하 예 교수님...


- 너무 하기 싫어요 (근데 하고 있잖아요)





결국 앞서 말했듯 인생의 진리란 변하지 않는 고전 같은 원칙들이고 왜 그것들이 고전인지는 원칙의 실천과 그에 따르는 효과를 통해 끊임없이 재입증되고 있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도 70대가 되었을 때 교수님처럼 내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나 또한 30대 때 이런 조언을 들었고 그 뒤로 꾸준히 실천해 왔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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