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인생책이 뭐냐고들 묻는다. '인생책'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책일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겐 평생 기억에 남을 문장이 담긴 책일 수도 있다. 나는 인생책을 나에게 꿈을 갖게 해 준 책으로 정의해보고 싶다.
나의 인생 책, 나에게 꿈을 갖게 해 준 책은 홍정욱의 <7막 7장>이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 같은데, 처음 그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의 느낌을 꽤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저자의 표정, 그 밑에 써진 <하버드 최우수 졸업>이라는 타이틀,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라는 저자의 모토까지 모든 것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존 F. 케네디에 관한 책을 읽고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그리고 15살의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케네디의 발자취를 따라 하버드에 입학한다.
그 완벽한 삶이 책 속에 있었다. 학벌, 외모, 가정환경 모든 것이 완벽했고 케네디를 발견한 나는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자 결심했다. 어린 나이에 나의 삶을 기획할 수 있음이 기뻤다. 즉 나에게는 완벽해질 수 있는 완벽한 가능성이 있었다”
-7막 7장 일부 발췌
이후 저자는 거침없이 드러낸 자신의 젊은 패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유학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책을 절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어린 나의 마음은 미국 유학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올랐다. 단지 성적만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학생을 뽑아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교육 환경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하버드는 내게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꿈을 펼치는 지성의 요람이요, 진리의 상아탑처럼 보였다.
그러나 돌연 혼자 유학을 갈만한 용기도, 패기도 없었던 나는 얌전히 한국에서 대학교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 2년 동안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면서 유학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기도 했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계속해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오느라 하버드에 대한 꿈은 자의 반 타의 반 접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법대협정교 파견 교환학생 모집'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집대학 목록에 있었다. 나의 꿈 하버드대학교가..
하버드 모집요강을 꼼꼼히 읽어보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 로스쿨 International Legal Studies Director에게 메일을 보내 물어보았다. 답이 안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있다가 회신이 왔다.
겨우 관련부서 담당자로부터 이메일 하나 받은 것일 뿐인데, 벌써 하버드에 갈 수 있게 된 것만 같고 마음이 들뜬다. 오랜 꿈을 나는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될까..?
벚꽃이 만개한 한 주였다.
활짝 핀 꽃을 보니 안도감이 든다. 올해도 무사히 펴 주었구나 하고. 1월에 한 해가 시작하는 것은 인간들의 정함이고 봄이야 말로 진짜 한 해의 시작인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꽃이 피고 나무가 푸르러지는 것을 보아야 새로이 시작할 힘이 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