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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 Feb 09. 2020

인도가 내게 준 삶의 교훈 (2)

내가 놓친 선택들에 대하여


오늘은 인도에서 얻은 두 번째 교훈 이야기로, '내가 놓친 선택들'을 나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인도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 한다. 




2011년, 21살의 나는 젊은 시절의 작은 실패를 경험한 후 삶의 전환점을 찾고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그곳이 하필이면 인도였다. 살면서 배낭여행은 커녕 혼자서 여행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나였지만 어쩐지 그땐 세상 어디라도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가 있던 것 같다. 그래도 인도라는 무섭고, 낯선 땅에 배낭 하나 메고 혼자 떨어지는 건 무서워 결국 인도 여행 카페에서 동행 한 명을 찾아 강남역에서 사전 만남을 가졌다. 그렇게 호정이 형을 만났다. '난 그쪽 일정에 다 맞출게요!'라는 말 말만 남기고는 순댓국 한 그릇을 비우고, 인도 어느 공항에서 몇 시쯤 만날 지만 맞춘 뒤 호정이 형은 쿨하게 떠났다. 뭐지.. 하며 당황스러웠지만, 사람이 수상하거나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아 별일 일겠거니 하며 우린 인도에서 만나 2달간의 동행을 시작했다. 


인도를 휘젓고 돌아다닌 페도라 형제

호정이 형은 내 생각보다 더 유쾌하고 호탕한 형이었다. 호정이 형의 그 호탕한 성격 덕분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내가 더 인도를 잘 받아들이고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호정이 형과는 남인도의 수도 격인 첸나이에서 만나, 폰디체리, 벵갈루루, 함피, 고아를 거쳐 뭄바이에 도착했다. 뭄바이는 인도의 경제 수도답게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꽤 많은 고층 건물들과 청바지를 입은 여성(!)까지 있을 정도로 현대화되어 있었다. 여행자들에게 그 말은, 볼 건 없고 물가는 비싼 그런 곳이란 뜻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뭄바이엔 내 대학 선배인 원경이 형(그래 봤자 당시 22살)이 인턴 생활을 하고 있어서, 미리 연락해 재워주고 먹여달라 사정해놓은 상태였다. 우린 그렇게 뭄바이에서 맘껏 먹고 자고 쉬다가, 본격적인 북인도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로 우리를 재워주고 먹여준 원경이 형


원경이 형의 아낌없는 배품 덕분에 우리는 살인적 물가의 뭄바이에서 돈 한 푼 안 쓰고 잘 먹고 잘자며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행자들은 떠나야 했고, 우리는 작별의 불꽃 보드카를 연커푸 입에 털어내며 마지막 밤을 뜨겁게 보냈다. 


다음 날, 속이 아파 잠에서 깨니 두 형들은 부둥켜안고 잠에 취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서 다음 행선지인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행 티켓을 알아보러 길을 나섰다. 지하철도 타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물어 당도한 티켓 부스에서 나는 당당히 여행자 창구로 걸어 들어가 티켓을 달라 했지만, 아뿔싸.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여권을 방에서 여권을 안 가져왔다는 것을. (인도 철도청은 여행자 전용 발급 쿼터(Tourist Quota)를 따로 운영하는 이 티켓은 여권이 있어야만 발급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할 수 없이 나는 숙소로 돌아와 형들과 술 잔치를 하루 더 벌인 뒤, 다음 날 형들과 함께 다시 티켓을 발급받으러 왔다. 이번엔 당당히 여행자 창구로 들어가 티켓을 달라 했지만, 직원은 다시 한번 거절 사인을 보냈다. 이번엔 '티켓이 없단다'. 아니, 어제까지 있던 티켓이 왜 오늘은 없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 넓은 인도 땅에서 하루가 지나도록 그 티켓이 남아있길 바랬던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난 호정이 형과 그 자리에서 다음 여행지를 정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면서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우린 큰 결정을 내렸다. 


그럼 위로 쏘자!


호정이 형과 나는 원래 가려고 했던 인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Agra)를 포기하고, 미지의 영역이었던 최북단의 암리차르(Amritsar)라는 도시에 가기로 했다. 그것도 33시간 동안 기차를 타는 여정으로, 바로 몇 시간 뒤에! 


계획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 되었고, 그 속에서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완전히 바뀐 일정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소로 향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암리차르 이후 북인도뿐 아니라 더 북부인 라다크 지역까지도 운 좋게 여행해보고, 그 여행 과정에서 너무 훌륭하고 재미있는 여행자들도 많이 만났다. 그때 봤던 인연들은 한국으로까지 계속되어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씩 보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호정이 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여행 중 만난 동행과 연애까지 하게 되어 둘이 다시 인도에 여행하러 가기도 했다. 참 사람 인연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경험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약 2달간의 첫 인도 여행에서 겪은 무난하고 일반적인 나의 여행 이야기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1-2년 동안도 내겐 추억은 회상하게 하지만, 아무런 울림은 없던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내 삶에 '선택'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선택'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질 때, 불현듯 이 이야기가 내게 큰 울림이자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위 이야기에서 처럼, 여행자들에게 '여정(Journey)'이란 수많은 돌발 상황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때문에 내가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는 복합적인 흐름에 가깝다. 또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서 여행 자체가 망가지거나 부서지기는커녕,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는 상황 혹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사함과 고마움을 얻는 상황으로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자들의 삶이란 대게 너무 멀리 보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을 좇으며 늘 새로운 발견을 찾아 떠나는 목적 없는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나의 삶이라고 다를까?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때 여권을 가져갔더라면, 그래서 암리차르가 아닌 아그라로 향했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명확한 건 나는 내가 계획했던 대로, 선택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불행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행복했었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자 계획하고, 실행하고, 반성하기를 거듭한다. 그 계획이 나를 내가 원하는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뭄바이에서 경험을 통해 완전히 그 반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삶은 내가 계획하는 대로만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때문에 계획적으로 삶은 사는 방식을 통한 행복 추구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나의 삶을 여행처럼 너무 멀리 보기 보단 현재의 즐거움을 좇으며 늘 새로운 발견을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써의 삶'을 사는 것이 나는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 믿게 되었다. 


삶에는 정답도 없고, 정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삶을 달성해야 할 목표이자 도달해야 할 목적지로 생각하며 살지 말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그리고 그 옆을 같이 걷고 있는 사람과 그 뒤에 보이는 풍경들을 눈에 담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이 삶을 잘 살 것이다(I will)가 아닌, 잘 살고 있다(I am)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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