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팀에서 일해보면서 알게 된 관점 차이들
회사에는 많은 부서가 있지만 그 중에서 앙숙으로 불리우는 견원지간 조합이 있다. 영업과 마케팅, 생산과 관리 그리고 스타트업씬에선 제품팀과 사업팀이 그 대표적인 조합 중 하나이다. 싸우는 이유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주요 쟁점은 결국 (니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상반되는 팀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전 스타트업에서 4년 간 전략과 사업 업무를 맡다가 회사를 옮긴 뒤 현재는 제품팀에서 Product Manager로 일하고 있다. 사실 두 포지션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어? 라 생각하며 들어왔지만, 옛 선조들의 말씀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제대로 경험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오늘은 제품팀과 사업팀,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양쪽의 관점 차이를 5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물론 현재 내 처지인 제품팀 입장에서)
사업개발팀의 주요 업무는 사업을 벌리고, 기회를 만들고, 경우에 따라선 파트너십을 맺어와서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 대표와 사업팀이 함께 그리는 사업의 크기가 사실상 그 회사 비전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 직장에선 하루 6-7개의 미팅을 소화해나가며 매일같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우리 회사의 밝은 미래를 그리며 기쁜 마음으로 회사에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 아주 중요한 문제가 숨어있다. 사업팀이 쌔빠지게 그리는 그 '그림'은 사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그리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그 그림을 완성시켜 색칠까지 끝내는 것은 사업팀이 아닌 제품팀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첫번째 관점 차이.
사업팀은 수 많은 시장조사와 회의를 거쳐 많은 파트너사들을 만나고, 수십가지 변수들을 추측해 현실적인 매출과 이익을 추정해보며 '와, 이거 되겠구나' 라고 들떠서 사업 기회를 '물어온다'. '물어온다'는 것은 '물어올까?' 라고 물어보는 권유와 합의가 아니다. 말 그대로 물어온 뒤 설득을 가장한 통보를 제품팀에게 해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라고.
그런데 사업팀은 모른다. 제품팀이 현재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을 걷어내고 어떤 것들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선 뒷 단에 어떤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잘 모르니, 그냥 막 던진다. 이렇게 해달라고. 왜 안되냐고. 저기 저 개발자 지금 놀고 있는것 같은데 잠깐만 이거 먼저 시키면 안되냐고. (근데 그 개발자는 지난주에 당신이 가져온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제품팀에서 실제로 일해보니, 이미 자의/타의에 의해 던져져있는 수 많은 백로그들과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이터레이션 스케쥴 속에 앞뒤 다 자르고 새로운 일이 떨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고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물론 사업팀에서는 우리 회사의 존폐가 달려있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또 어쩔수 없이 가져온 일이었겠지만, 미친듯이 노를 저어 북쪽으로 향하고 있던 선원들에게 '아니다 서쪽으로 가자' 라는 말은 참 받아들이긴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제품팀에서 일하며 알게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사업팀에서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했던 MAU/DAU가 마치 수면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오리발 같이, 제품팀과 운영팀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하나둘씩 챙겨가며 만들어내고 있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업팀에서 일하다보면 매일 같이 말하는 매출 얼마, MAU 얼마 하는 숫자들은 개념적으로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상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품팀에서 일해보니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숫자들은 무한히 출렁이는 '변수'에 가깝고, 그 변수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는가는 제품팀의 어엿한 성과이자 보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보고 지나가는 배너, 아이콘, 푸시 메시지 등이 결국 언젠가 한번은 '사람의 손'을 탔을 것이고,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제품팀의 일원이었음을 잊으면 안된다.
사업팀에서 일하며 간헐적으로 회사 내 HR에 관여하면서 시간적, 인적 리소스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크게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품팀에 온 이후 나는 생각이 200% 그 중요성에 공감하며 제품 관리의 핵심은 리소스 관리이고, 제품팀이 어떻게 리소스 관리를 하느냐가 단연 회사와 서비스의 속도를 결정짓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품 관리 상에서 리소스라 함은, 결국 사람과 시간 그 둘 뿐이다. 어떤 제품팀은 1번에 1개의 제품만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면, 어떤 제품팀은 1번에 3개 이상의 제품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 이는 효율성이 돈과 시간 단축으로 연결되는 스타트업 씬에서는 매우X100 중요한 포인트고, 이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스타트업의 속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제품팀에 와서 제일 충격을 받았던 포인트가 이것이다. 바로 상품은 제품이 아니라는 것. 사업팀에 있을 때 나는 항상 좋은 사업 기회를 포착해 제품에 잘 녹여내면 그것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말도 맞다. 가격을 조정한다거나, 타겟 세그먼트를 잘 잡는다던가 혹은 이벤트를 잘 풀어내서 유저들이 잘 들어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품팀의 진정한 성과는, 어떠한 상품이 떨어져도 사용자들 잘 전환(Convert)시키고, 유지(Retain)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외의 부차적인 요소들은 제품팀 입장에선 모두 가변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가깝다. 하지만 직관적인 UI, 유저가 원하는 것들을 눈 앞에 먼저 가져다 줄 수 있는 UX 등이 잘 갖춰진 강력한 제품은 어떤 상품을 가져다 넣는다고 하더라도 제품 그 자체로써 빛을 낼 수 있다. 또 어쩌면 좋은 제품은, 어떤 상품을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찾아줄 수도 있다. 금융서비스 토스가 뜬금없이 만보기나 게시판을 넣은 이유는 상품(만보기, 게시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품으로 인해 제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Retention, Conversion)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제품팀에선 사업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볼 수 있다. 바로 고객이다. 사업팀은 어쩌면 스크린과 종이 속에서 시장을 이해하고 서비스를 읽는다. 그렇게 때문에 실제 유저가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 비즈니스엔 어떤 약점이 있고 기회가 있는지에 대해 더 둔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품팀에서 일할 때의 장점은, 내가 만든 제품/서비스를 쓰는 사용자(고객)의 목소리를 바로 듣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잘한 건 잘 했다. 아쉬운건 아쉽다. 바로바로 듣고 고치고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이야 말로 제품팀의 특권이다. 가끔 CS 채널로 들어오는 의견들 속에는 놀라운 아이디어들도 섞여있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수백수천명의 머리를 빌려 우리 제품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사업에는 늘 두 가지 축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없던 것들을 생각해내고, 기회를 만들어 내는 '가치 제안' 적인 면과,
우리가 추구하는 그 가치를 현실로 끌어당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가치 구현' 적인 면.
동전의 양면 같은 이 두 축은 마치 조커와 다크나이트 처럼 'You complete me' 하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치며, 다시 사업팀과 싸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