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인문계와 실업계, 문/이과와 예체능으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공부를 한 뒤 사회로 나왔다. 누군가는 대학에서 한번 더 세분화된 전공 공부를 했고, 누군가는 석/박사 트랙을 밞아 자신의 전문성을 더 날카롭게 세웠겠지만, 결국 우린 사회로 나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 속에 속해 돈을 벌며 살아가게 된다.
급여를 받으며 사는 사람과
스스로 소득을 만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
공무원이나 일부 행정직들은 연금이라도 제법 나온다지만, 나머지 직장인들은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을 온전히 회사와 조직에 바치며 젊음의 시간을 돈과 맞바꾸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의 법적 시간당 노동 가치, 즉 최저시급은 최소 8590원이다. 우리는 흔히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라 하면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의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지만, 사실 연봉 3000만 원의 직장인의 월별 노동시간을 160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5625원 밖에 되지 않는다. (세전, 4대 보험 떼고 나면 13000원 언저리쯤 되겠다) 청년들이 빚져서 대학 가서 발버둥 치며 토익 보고, 자격증 따서 취업하는 것이 시급 5000원을 올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할 다름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아 커리어를 쌓고 이직하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은 나의 시급을 올리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며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곧 내 시급(연봉)을 올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급여(월급, 연봉)엔 참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내가 이 회사 당장 때려치운다! 하다가도, 매달 월급날 통장에 따.박.따.박.찍히는 그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1달만 더 다녀볼까'라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이 급여(월급)가 계속 나올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 마법의 급여는, 내가 매달 할부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매달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여 차를 사게 하고, 집을 사게 한다.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당장 저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어 받게 되는 10년, 20년납 대출은 당장의 3년, 5년은 문제없지만, 내가 늙고 경쟁력 없어지는 10년, 15년 뒤엔 내 목을 조여오는 족쇄로 다가온다. 위에선 찍어 누르고, 아래에선 치고 올라오는 살벌한 전쟁터 직장 안에서 15년 뒤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나보다 15살 많은 차장, 부장님의 모습을 보면 이 회사에서 '버티는 것에' 성공한 자들의 비참함을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밀려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수많은 경쟁자들은 아마 그 마법 같은 급여에 맞춰진 나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체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주고 있을 것이다. 급여란 참으로 달콤하고도 중독성 높은 마취제다.
빠르면 30대 후반, 늦어도 40대 후반이 되면, 직장 내에선 저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한 더 이상 설 자리도, 갈 곳도 없이 돌고 돌다 저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말로는 '명예롭게' 라지만, 현실은 '나가라는 것'이다. 갖은 수모 속에서도 버티고 버티다 회사 밖으로 나오면, 드라마 '미생'의 말처럼, 회사 밖은 지옥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 밖이 지옥이라기보다는 내가 회사라는 온실 속에서 꿀을 빨던 나비에 가까웠을 것이다. 회사라는 큰 공장 속 좁디좁은 자리 한 켠의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 십수 년간 조여 왔던 그 '나사 조이기'는 회사 밖에선 더 이상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하지 않다. 나에게 접대하고 머리 조아리던 거래처 박 전무도 회사 밖 발가벗은 내게 빨아먹을 단물은 없다는 걸 귀신 같이 알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 평생을 바친 회사를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골프밖에 없다. 참 쓸모없다.
그래도 내가 누구냐! 왕년의 회사 에이스 실력을 발휘해서 모아 놨던 돈 조금에 퇴직금을 보태 치킨집을 차린다. 인테리어에만 몇 천이 들었으니 이제 돈 버는 건 시간문제다. 개업 후 몇 달간은 거래처 지인들, 가족들, 친구들이 와서 매상을 잘 내줬다. 이대로만 하면 환갑 때까진 문제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3달이 지나니, 귀신 같이 손님이 끊겼다. 뭐가 문제일까? 매니저를 닦달해보고, 인테리어도 바꿔보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다. 장사는 백종원이나 하는 것이라며 권리금만 겨우 받고 가게를 접었다. 와이프는 이제 나는 집에만 있으라고 한다.
직장에선 사업부를 호령하던 김 전무도, 회사 밖에선 아르바이트 4대 보험 제대로 처리 못하는 무능한 사장님이 된다. 맷집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무언가 새로 배우기 시작하기엔 내가 살아온 날이 너무 길다. 왜 회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말하던 금융권, 전문직, 대기업 직장인들이 다니던 회사들은 이제 더 이상 양적 확장을 못하고 새로운 게임 체인저 회사들과 정면으로 경쟁하며 그 위상을 잃고 있다. 샤오미와 맞서는 갤럭시. 유튜브와 맞서는 공중파 방송국. Facebook과 맞서는 언론사. 토스와 맞서는 은행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 갔다며 축하받고 기뻐했지만, 딱 3달 뒤 알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래도 월급 많이 주니까 몇 년 버텨보자 싶지만, 내 위의 과장님, 부장님을 보면 나도 곧 저렇게 될 것만 같아 이 곳에선 더 이상 일을 못할 것 같다. 나도 저렇게 꼰대가 되긴 싫으니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자식으로서 최고의 미덕이었던 때가 있었다. 2020년, 지금도 그 미덕이 통한다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 날은 아직도 길고, 앞으로는 더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나 스스로가 직장 내에서 인정받으며 따땃한 월급을 받으며 살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기업들은 점점 더 기술을 통해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려 할 것이고, 그 기술을 잘 다루는 젊고 Fresh 한 인재들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할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직장인들이여, 자의던 타의던 당신은 언젠가 야생으로 나올 것이다. 그 야생으로 나왔을 때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온실 속에서도 늘 온실 밖 야생을 대비하며 미리 넘어지고 까지며 맷집을 길러야 한다. 사업을 하던, 임대 수익을 올리던, 글을 쓰던, 그 무엇이 되어도 좋다. 안락한 지금의 당신의 모습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지 말고, 늘 깨어있는 자세로 홀로 설 그대의 앞날을 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