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학거사 Nov 23. 2021

산 믿음의 초크포인트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 중심”으로 대충이 아닌, 자신의 힘을 제대로 빼고 주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순종을 통하여 쓰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승부사”가 되는 것일 것입니다. 늘 어느 곳,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임하시는가? 를 민감히 느끼며 다가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으로 믿음은 광야와 같은 험난하며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해주는 한줄기의 빛으로 “믿음의 다림줄”이라 합니다. 스스로 두 손 묶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허우적거리며 힘 빼지 말고, 오직 주님이 하셔야만 된다는 입장에서 나를 향하신 뜻을 깨닫고 어떤 것이 하늘의 방법인가?를 침잠하여 기도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자신을 대면한다고 함에도 힘이 들고, 진정으로 진솔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매일 매일의 기도를 통하여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의 접촉경계점에서의 충돌은 자신 스스로가 쌓아 온 것들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의 오판으로 세상적 관점으로 둘러쌓아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찾아내지 못함에 따르는 절대자와 자신과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엷은 막을 통하여 자신에게 영적 부적응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영적 부적응 상태의 지속은, 너무나도 애타는 심정의 지극한 외치심을 경홀히 대하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은 기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목청 높여 외치시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하며 엷은 막에 가로막혀 스스로를 더 제한해 버립니다. 정확히 선을 넘어가지도 못하며 용기 내어 파쇄하고 돌파하지도 못하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헛소리를 떠올리며, 스스로 옭매며 고정된 행동패턴을 유지하고 습관적이며 자동화된 행태를 지속시키며 타이틀과 봉사로 자신을 위안하고자 무진 애를 씁니다. 분명 주님은 가시며 지혜의 영을 보내주시어 내 마음의 지성소에 계시도록 하셨음에도.. 세미하신 성령의 이끄심에 반응하지 못하고, 엷은 막 주위에 공허하게 떠도는 메아리만을 찾아 그것 자체가 옳은 줄 알고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믿음에는 흠과 점, 티가 없다고 철석같이 확신하며, 우리교회 좋은 교회~ 모여 기도하자며 교제는 최상 신앙생활의 지속으로, 모여 기도하여야 하는데 얼굴보아 좋으니.. 먹고, 마시며 매번 누구 아들은 어떻고~ 아~ 잘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하기는 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 심령에 막강하며 무소부재하신 성령님의 내재하심은 간 곳 없고, 스스로 자기 복음을 만들었음에.. 지속적으로 제시하시는 영적 각성은 회피하며, 권위자들의 애매모호한 내용은 잘도 받아들여 옳은 줄로 각질화 시켜버리므로 엷은 막은 점점 더 강화되어 패역해감도 아예 인지조차 못하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믿음을 지니면 그런 믿음은 뭐야?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야.. 우리 목사님은.. 나의 영적 스승은 그러지 아니하데.. 하며 자신에게 내사되어 투영된 부분으로 상대에게 투사하여 판단 정죄하며 보이지 않는 갈등 아닌 갈등을 유지해갑니다. 그런 상태는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환경으로 천하보다 귀하다는 한 영혼의 영적 상태를 바로 잡아 갈 수 있으려는지???? 아련한 생각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했던.. 믿음이 돈독했다는 세리와 바리세인들의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솔직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저 스스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앞 만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수많은 시간 울며불고 훌쩍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성령의 조명으로 깨닫는 것은 전문용어로 “산 믿음의 초크포인트(Choke Point)”가 사탄마귀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임이 아닐까? 합니다.


초크포인트는 물자 수송이나 군사작전 등에서 전략적 중요 의미를 갖는 목을 조를 수 있는 치명적인 구간(길목, 조임목)을 말하며, 영적인 전쟁을 의미함에도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사탄마귀는 믿는 자 모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스캔하여 주요 부분을 타켓으로 설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의식과 성령의 영적인 접촉경계에 강력 저지 방어선을 확보하였기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전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현실적 초크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초크포인트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무구한 희생이 따랐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도 내려놓고 죽이지 못하는데.. 강력한 진을 타파하기는커녕 포로되어 종노릇하고 있는 자신을 교회당 다닌다 아니라~ 부인한들 포로는 포로일 뿐일 것입니다. 산 믿음으로 초크포인트를 헤쳐 나가 자유로움과 평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울부짖으며 기도할 수밖에는 없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될 것으로 자녀 다 길러 놓고 그 때나 하고 죽기 전에 한번 세게 할 것이라는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재갈을 물리고 묵묵히 익어가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