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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절단과 단절은 스스로의 몫입니다.

오늘은 3일 단식의 2일차로 3일 단식을 몇년만에 다시 해보며, 예전보다는 편함과 더불어 영적인 부분이 성숙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긴 것은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습관처럼 먹기도 하며, 나이가 들면 한끼라도 거르면 뭔가가 섭섭한 생각도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금식과 단식의 차이에 대한 사전적 의미로, 금식은 일정한 계율을 지키거나 어떠한 결심을 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약간의 물을 마셔가며 할 수 있으나, 단식은 물을 포함하는 그 무엇도 먹지 않고 무조건 굶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기반에서는 일상적인 음식을 모두 끊고 기도하는 일(눅2:37)로 육체의 즐거움을 억제하고 영을 맑게 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교제의 행위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해답이 있음을 알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맡기는 신앙 행위이다(삼상7:6; 삼하12:16)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금식기도는 신앙 훈련에 있어서 매우 소중함을 제시하는 것으로 영적으로 민감함을 확보하므로 주의 음성을 분명히 듣고 성령의 민감함에 복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를 생각해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장이라는 이사야 58장(3~12절) 말씀을 그대로 정리해 보면,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 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참된 금식과 단식을 제시하심에는 이스라엘의 가식적인 금식을 책망하시면서 올바름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심입니다.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크게 외치고 아끼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명하신 말씀의 본질은 이스라엘 백성(믿는 자들의 총칭)의 죄와 허물을 알리라는 것이였습니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에 대하여 심하게 책망하시며 저주하셨습니다. 믿는 자라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외식적이며 형식적인(교회 직분과 봉사에 목매며, 예배참석과 교제로 모든 것을 퉁치는)면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하고,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약속하신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중점적인 사항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꺼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우선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으로 이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남의 기반의 결과를 보시고 의인이라 칭하시며 축복의 그늘로 이끄실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자신의 진액을 뽑아 기도의 잔을 채우며 산제사로 드리는 경건하고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은 가족 구원을 위하여 금식하며 부르짖을 때 외면하지 않으시며 “내가 여기 있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어 여기 있다 하심은 곧 구원과 은총이 임함을 의미하므로 세상에는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으로 현실적인 문제도 덩달아 해결됨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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