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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뜻에 부합됨이란?

부합의 뜻은 “맞대어 붙임”과 “부신(符信 : 어떤 증표(證票)를 찢거나 나누어 서로 지니다가 뒷날 맞추어 증거(證據)로 삼은 물건(物件))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입니다. 부신은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하며 훗날을 기약하며 증표로 삼기 위하여, 2개의 조각으로 쪼개어 나누어 가졌다가 뒷날 서로 맞추어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부신(符信)은 국왕이 대신과 장수(將帥) 등을 긴급하게 부르거나 지방의 군사지휘관에게 병력을 동원하는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였던 신표(信標)로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에서는 부신에 대해 “부(符)는 돕는다는 것을 말하고 양쪽이 서로 돕고 합쳐서 차이가 없는 것이며, 또한 돕는 것이니 신표를 돕는 바이다.(符之爲言扶也, 兩相扶合, 而不差也, 又輔也, 所以輔信.)”라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신은 국왕의 명령이나 군사지휘관의 관직에 따라 명소(命召)·호부(虎符)·밀부(密符) 등이 사용되었는데, 믿는 자 모두는 성경(말씀)이 지닌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성경(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적용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증표라 할 수 있는 믿음에 따르는 부신의 증거를 보유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각자에 합당한 각기의 증거를 확보하기 이전에,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원론적인 입장에서 성경(말씀)의 본질, 실상과 더불어 성경(말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견해를 지녀 너무 단편적이거나 편협해져서는 아니 됨을 전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시는 깊이 있는 깨달음과 참된 인식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으로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올무가 되어 스스로에게 크나큰 함정이 되어 선한 결과보다는 옴짝달싹 하지 못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교회생활을 통하여 믿음을 증명하려 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에 대한 반론으로 그렇다면 교회생활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그의 나라와 뜻에 부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키기에는 미흡함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따라 붙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는 믿는 자 모두는 뭇별처럼 많은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긴다는 것은?에 대한 깨달음과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고 주님이 보시기에 흡족해 하실까?를 위하여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시도하여야 한다는 벽에 도달하게 됩니다.


세상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도 부모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중의 하나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기뻐하시며, 어떤 부분을 증오하시고 어떠한 사람을 찾으시며 섬길만한 능력을 부여해주시는지에 대해 제대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기초적인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돌아보면, 기본전제에도 미치지 못하며 믿는다하는 자들이 널려 있음에 마음이 아린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와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해 안타까워하심에 일 만분의 일이라도 그 뜻을 헤아린다면 솔직히 우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 뜻에 몸 둘 바를 몰라 해야 하나님을 섬길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제대로된 뭔가?의 정확한 신표(증표)가 있어야 기도가 상달되어 응답을 받아 내거나, 사탄마귀의 방해공작도 피해나갈 수 있으므로 날로 일취월장을 이룸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부합됨을 얻어낼 수 있고, 스스로 섬겨나가는 과정에서도 은혜와 더하시는 은혜로 하나님께 온전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서 그에 따르는 그 무엇과 그에 대한 속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믿음의 순도를 좁혀나가는 노력은 자의적으로 선결해야 할 것으로 그 모든 전제적 사안은 자신 스스로 안고가야 하는 것으로,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짠~ 하고 하늘로부터 날아오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칼로 에이는 듯한 몹시 고통스러움의 영역적 깊이를 느끼며, 자신의 뜻과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자신의 뜻과 생각은 하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하며, 아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 속에서 세심히 솎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은혜주시는 아버지께서는 지경에 지경을 넓혀 주시며,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선한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저를 향하신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께서 이루시옵소서, 그러나 저의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행하시옵소서, 제 마음은 다만 당신의 뜻이 성취되기를 원하옵고 당신의 뜻대로 제 몸에서 당신께서 하시려는 것을 이루실 수 있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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