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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실제적 깜깜함..

요즘 들어 믿음을 지니며 현실적 괴리를 느낌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저 자신과 제 삶을 돌아보면, 부정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믿는 자들과의 괴리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건 크고 간에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며 세상을 염려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교회를 타이르는 안타까움이 존재하지만, 무시하고 구태의연하며 짖어대는 소리는 심령을 찢어발기지 못하고 공허한 것은 사실입니다. 안다 모른다를 떠나 있고 없음이 아니라, 오직 우리들 가운데 함께하시며 역동적으로 기이한일을 이루시는 음성조차 왜곡을 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함에 따라, 거짓되고 형식적임을 여실히 증명되고 밝히 들어나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자신 스스로가 숙명적으로 맞이하게 될 삶과 죽음 앞에서 이유와 원인의 부사인 왜?로 까닭을 물어보기 위하여서라도 교회는 건강하여야 되며, 더 나아가 교인들은 기쁜 소식의 대상으로서의 특권과 은혜 충만 되어야 하지만, 겉으로는 거룩을 외치나 영적으로는 썩어 문드러져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울부짖으시는 외침에 대한 일언반구의 미동이나 반응은 고사하고, 진리와 기쁜 소식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있음도 인식하지 못하며 현실에 타협해 나가며 말로는 금강산을 떠오는 듯함은 저만이 느끼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의미한지는 말씀으로 주셨음에 명확함을 넘어 가슴과 심령에 새기고 자기 자신을 쳐 다독이며, 희망찬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군병이어야 함에도 일상적으로는 회의론자와 같음은 싸워보겠다는 의지는커녕 그냥그대로 무장해제를 당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믿는다고 믿는 것은 아니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름에 있어, 스스로 크게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은 초월되는 “확증”이라는 측면으로 믿음에 관한 단순한 추상적인 느낌이나 주어지는 대로 받아 지식적으로 쌓아 올린 주관적이며 자기복음적인 것이 아닌 것들을 증거삼음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 표증적으로 나타나는 현실과 괴리된 화자의 삶이 아니라 개인적 이동성전의 제사장으로써의 역할이 재건되어야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이동성전의 제사장으로서의 기본적 전제는 죄의 속성을 지닌 인간에 걸맞는 영적인 영역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 기도로 무장되어야함은, 기도가 장착된 빛의 전사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영‧혼‧육이 각성되고 발현된 기도 훈련으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도 예수님의 이름을 외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며.. 진정으로 자신은 기도로 체화된 자인가?를 돌아보아야 되며, 믿는 자로서 자격 미달임을 깨달아야함에는 본인이 믿어 의심치 않는 믿음의 결과가 희망사항이 될 수도 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현실과 영적인 세계에서의 기본적인 절차와 관계는 철저하면서도 온전하게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함에는 현실만을 강조되면 영적인 영역은 찌그러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그 자체를 단순한 느낌 추상적이며 주관적인 생각과 지식적인 것이 아닌 실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 대한 근본적이며 개념적인 접근이 없다는 그 자체는 눈 먼 맹인으로 가련한 자로 영적 안약을 성령께 무릎 끓어 넣어달라고 해야 함에는 스스로는 눈먼 자이므로 심봉사 눈 뜨듯이 마음과 성품을 다해 은혜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이름에, 주님 눈으로 보시기에 합당한자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신앙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으로 무엇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인식을 내려놓아서는 아니 될 것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며 괴리와 오차를 보정하여야만 “주님 강림”에 대한 사실에 눈뜨게 되며 회개를 통한 자기 부인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들을 향하신 한없는 사랑의 끝맺음을 이루는 창조 역사가 종료를 이루는 시점에서 스스로는 제대로 믿는 자로서 주님은 자신을 알고 인정해 줄 것이라 믿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스스로는 넓은 길로 가는 자로 인식되지는 않는지? 두렵고 떨림으로 점검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주님께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아닌, 주님 보시기에 제대로 인정받는 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은혜 받을만할 때 준비하고 부르짖는 기도로 마음을 토하므로 주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 하심을 경험하여야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속의 영적인 온도와 실제 적인 믿음의 온도 차가 극한 갭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은 맹인으로서 영적인 현실을 볼 수 없다는 깜깜함을 깨닫고 구원 역사의 밝은 빛을 은혜로 주시기를 갈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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