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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Feb 26. 2024

근성 있는 믿음

승부의 세계는 인정사정도 없는 냉혹한 것으로 경기를 거듭할 때마다 진편을 제외시켜 나가는 아시안컵 드라마틱한 축구의 역전승을 보느냐, 밤잠을 설치고 너무나 감동이 고조되어 생활 리듬이 깨져버렸습니다. 감동에 감동을 더하는 것은 젊은 전사들의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집념, 더불어 믿기 힘들 정도의 침착함과 강한 의지와 투혼에 따르는 근성 있는 축구는 더욱 더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심장을 쫄리게 하는 긴장 속에서도 의연히 최선을 다하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저의 젊은 시절로 돌이켜 그 시절로 돌아가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 했을까? 하는 생각을 진솔이 해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나라의 이름을 걸고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 Another Level의 차이는 사소한 것도 절대 사소하게 대하지 않고,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디테일로 골로 결과를 도출해 냄에 존경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승부사적 근성을 지님에는 수많은 훈련으로 다져진 몸의 단련과 마음에 체화시킨 정신력에 스스로 부여한 목적에 대한 가치관을 뚜렷하게 새기고, 끈기와 근성을 기술과 전략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섬에 더욱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저는 안방에 앉아 보고 즐기지만, 현장에서 수많은 마크맨들에게 차이고 부딪치며.. 여기저기 찢기어 시커멓게 멍이 들고, 붕대를 칭칭 감아 테이핑을 한 무릎은 사람 무릎인가? 싶을 정도의 상처투성이의 다리 사진을 접하며 마음 한구석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자비 없음과 같이 공을 잡으면 상대에게 거친 태클을 당하고, 공격해 들어가며 2~3명에게 둘러싸여 교묘한 반칙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더욱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깊어질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험난했던 사투의 흔적은 온몸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고 몸은 엉망진창됨으로 인해 자신의 선수 생활은 짧아질 수밖에는 없겠지만, 국가를 대표한다고 하는 명분 속에 자신을 던지고 오직 승리를 위한 일념으로 임함도 높이 사야할 대목일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이겨야만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한 최선을 다해야하는 입장으로 상대보다도 한발 앞서는 능력을 쏟아부어야함이 승부의 세계가 지닌 차별화된 특징으로 바로 승부의 세계가 요구하는 덕목(갖추어야 되는 능력과 자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승부의 세계에는 당연한 것은 존재치 않으므로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하며, 비록 졌드라도 잘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짜고 친다면 모르겠지만, 자비는 존재치 않는 것이 게임이며 시합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하여 꼼수나 불법적 행위를 일삼아야 되는 것은 아니며, 페어플레이를 통하여 공평한 조건에서 경기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우므로 최선을 다해 분투한 후에는 승패에 구애됨 없이 승자를 축복하고 패자의 기분을 위로하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므로 보다듬어 격이 다른 차원의 아름다운 기품을 풍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근성 있고 인성이 바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성공확률이 높다하므로 승부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하는 악착같음을 장착하여 물고 늘어지며 최선을 다함을 기반으로 집중력을 확보하는 승부 근성과 책임감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재능과 끼로 똘똘 뭉쳐내야 근성이 발휘될 수 있는 기반이 이루어지며, 사실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의 역할도 그리해야 하지만, 자신의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근성 있는 믿음을 추구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스스로는 숨을 헐떡이며, 데드 포인트의 극한에 이르러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지라도 의연하며 평강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 스스로 반문해보며 각자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의 삶을 이루어 보기 좋았더라 하심을 얻어냄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렸으며, 자신의 자세와 입장정리, 행함을 위한 스스로의 가치관 정립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모든 결과를 바꾸어 줄 것으로 자신만의 근성 있는 믿음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바른 믿음에 관한 시각의 차이에 따른 결과는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보다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절대적 지표와 상황을 이룰 것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각오를 지녀야할 것으로 스스로가 익숙한 것만으로는 아닐 수 있으므로 먼저 믿음이 아닌 것부터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정의하므로 믿음의 선진들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의 길을 갔음에 믿음의 증거로 믿음의 반열에 설 수 있는가? 를 통해 실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인가 또한 발견해 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과 용사들보다 더 굳센 믿음을 소유해야함을 이루어야 하는 마지막 때로 살아생전에 다시 오실 주님을 뵈올 수 있는 영광을 지닌 자들로 믿음에 근성을 버무려 세상을 향한 믿음의 증거들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작은 믿음의 증거라 할지라도 그것을 끝까지 붙잡아야 될 것으로 세상을 감당치 못한 사람들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믿음에 근성을 발휘하여야 할 것으로 주님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해보아야 할 것으로 혼자만 잘해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함께 하는 자들과의 하나 됨이 더욱 중요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현재 상태에 문제가 없는데 뭔? 소리여~ 하실 수도 있겠지만,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그에 대한 증거로 세상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와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므로 우리가 남길 유산은 믿음 밖에는 없으며, 오직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할 것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산 사람들의 역사적 기술로 그 믿음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들이 불가능 속에서도 믿음을 따라 살아온 삶은 이 땅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닌, 하늘 본향을 바라는 나그네의 삶을 영위하고, 바랄 수 없는 것까지 바라는 삶을 살아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믿음의 선진들은 어떤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 믿음을 떠나거나 부인하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여긴 자들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는 믿음이 단순한 외침이 아닌 인생 그 자체임을 몸과 삶으로 보여준 실증적 예로 우리 믿는 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을 세상에 증거 하는 가운데 성장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믿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삶 전체를 통한 실천으로 행하여야 할 것으로 일상에서 그 믿음에 근성을 지니고 실천할 때만 이루어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도 결과 격, 수준이 있어 각기 다른 차원을 이루고 그에 대한 증거를 지니므로 그에 합당하게 신앙을 완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뿐만 아니라 그 중심을 들어 보시기 때문이라도 자신이 쌓고 이룬 것들을 내세우거나, 주시기만을 바람보다는 스스로 현재의 믿음이 과연 바르고 옳은 것인가? 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어제보다는 내일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의 작은 경험을 통해보면, 근성 있는 믿음을 소유하셨던 분들에 관한 일관된 공통분모는 “대가 세다”라는 것으로 무엇인가? 주어지면 그 뜻을 굽힘없이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을 대한은 수준과 위상을 달리 높여야함에 있어 교회 직급과 봉사로가 아닌, 구원에 방해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초개같이 털어냄을 선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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