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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Feb 26. 2024

영적 전이와 역전이

몇 일전,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이대 음악치료대학원에서 연구생 과정을 1년간 마치고, 지금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음악치료과학과에서 음악치료를 통한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불철주야 열심히 노력하는 저의 딸이 강의를 다녀와 “전이와 역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제가 심리학 용어인 전이와 역전이에 대하여 처음 들어본 기억으로.. 딸이 대학원 진학을 위하여 대학원 탐방이라는 로드쇼에 함께 참가했을 때로, 로드쇼의 각 대학원 부스를 거쳐 이대 대학원의 교수님과 딸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였습니다. 딸은 상담 부스를 지키고 계신 남자 교수님께, 음악치료에서의 전이와 역전이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고 했고, 교수님께서는 입학 상담회에서 이런 깊은 전공적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나? 하시며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것을 옆에서 들었던 것입니다. 기본적인 내용으로 전이(Transference)는 내담자가 과거의 주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감정이나 환상이 상담자에게 치환되어 나타나는 것이며,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는 심리상담에서 전이현상이 상담자에게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인간들 개인의 정신적 마음의 작용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료자에 대한 역전이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자로써 내담자에게 부적합한 퇴행 반응을 일으켜서는 아니 되고 치료자 스스로 반감으로 억제력을 발휘하여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반응으로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제시해보는 것입니다. 더불어 무의식적인 역전이는 성공적인 치유 상담에 영향을 끼치므로 방해를 받거나 상황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버리게 되므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상담자가 내담자와 “시행적 동일시(Trial Indentification)”에 고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통찰 지향적 접근을 시도하여야 한다는 점을 제시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반응(정서적이면서 인지적인)에서, 환자와 치료사 사이의 전이와 역전이를 바탕으로 한 관계 개방에서 “완전히 발달적인 전이”가 중요함을 표출해 보고자함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쉽게 정리를 해보면, 역전이는 내담자의 감정전이에 대한 상담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말하며, 상담자가 침착하고 이성적일 때는 감정전이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만 감정전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내담자의 엉뚱한 감정전이에 흥분해서 다시 감정적인 반응을 내담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치료의 과정은 증상의 감소나 사회적 적응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특성이 담긴 경험의 확대가 중요시된다는 점에 바탕을 둔다면, 심리치료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대상에게 의존적인 감정을 지니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과 뜻을 경청하고 이해해주며, 극히 내밀한 비밀조차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적 구조의 틀이 형성되면,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호감과 의존성을 지닐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감정적 상황을 이른바 “전이 감정”이라 하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전이/역전이 감정이 남용되기 쉬운 탓에 상호적 관계성을 흩트려 트려서는 아니 될 것으로 치료라는 전문 영역을 터치할 의도는 없지만, 실상은 본질적 신앙관계에서의 전이와 역전이에 대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므로 우리들의 신앙적 관계 성숙에 차원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본적 신앙 관계는 영적인 존재들로서의 관계에 따르는 결과적이며 실체적인 연합이라 할 수 있는데..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신앙 감정이 포함된 인간적인 속성까지가 함축되어 상대에게 전이 되므로, 그에 따르는 입장에서 느낌이나 감정으로 치달으면 위험성이 커질 소지가 다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형식적이며, 질서를 위한 미명 아래 통제적인 상황에서의 신앙생활을 조심하여야함에는 일방적 전이에 따르는 역전이적 충돌로 인한 부정성 표출과 고유한 영적인 색깔이나 영적 감정들이 스스로들에게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온통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신앙의 기본적 정형은 절대자의 은혜로 제공되는 것들과 자신 안에 내재된 은사와 능력들이 기름부음을 통하여 각성되어 활성화되는 것으로, 자신의 공로나 직분의 등급에 의한 매개를 통하여 역사되거나 전이 된다는 생각을 지니는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견해로 그에 따르는 폐해 또한 클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먼저 믿음이라는 체제에 있어서 공동체적 관계와 개별적인 믿음의 속성들이 맞물려 함께 신앙적 성숙을 이루는 터전이 되어야 할 것으로, 믿음에 관한 절대적 기준을 바탕으로 하는 서로간의 공감과 따뜻한 지지로 활력을 지닌 곳이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든지, 자신이 경험한 영적인 관계가 설 자리가 없다면, 신앙 공동체는 건강할 수 없으므로, 자유함 속에 영적 시선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믿음의 본질에 관한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노력과 열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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