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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Feb 27. 2024

어떻게 하느냐? 했느냐? 에 따라...

세상만사, 무슨 일이든 같은 내용도 어떻게 하느냐? 했느냐? 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일 것으로 ChatGPT조차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상황을 분석하고 목표를 설정한 후에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당 문제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느냐? 했느냐? 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라고 답을 제시해 줍니다. 그렇다면, 실제 그렇게 행하며 실천하려 했는가? 에 대한 답은 본인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으로 스스로 도출된 결과에 대한 자신이 어떤 요인으로 미진할 수는 있겠지만, 하고자 했고 하여야만 했던 그 자체로부터 나온 결과 값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음을 자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므로 단 한 번의 중요성을 지닌, 자신의 인생에 있어 너무나 소중한 일이라면 더욱 단 한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삶과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최근이 있었던, 실제적 내용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 믿을 것은 본인 자신이 어떻게 했느냐? 와 하느냐? 에 따라 진정 달라질 수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믿을 것은 자신을 통한 오직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 밖에 없음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A라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수술을 하시다 하늘로 불려 올라가 대한민국의 전환을 보고 듣고 오시여.. 대한민국 애국운동에 목숨을 거신 분이 있고, 그 분을 따르고 자칭  썰을 잘 풀어 방송에도 자주 나오신 B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A 목사님은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국회에 공산정권의 하수인 주사파 운동권을 몰아내야 한다고 올인 하시며 새로운 당을 창당하여 요셉과 다니엘 같은 자들을 국회로 보내시고자 정말로 노력하시며, 서로 잘 알기에 B 목사님을 당대표로 앉힘에 사단이 나 버린 것입니다. 대중적 설교와 교회 운영으로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목사님이시지만, 치열한 실질적 전투 상황에 봉착된 입장에서 헛다리를 한번 크게 질러버리므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경악케 만들어 버린 사건으로 교회 운영과 설교 잘한다고 따랐다가는 뒤지기 십상임을 십분 절감하고 모두 뒤로 자빠져 버린 것입니다.      


정말로 오랫동안 준비하고 여러 교단과 순복음 교단까지 지원하므로 좋은 인상을 지녔으나, 제일 앞장서서 사나 죽으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창해도 어려운 판에 자신만 살고자 야합을 기술적으로 제시하므로 그 동안 쌓았던 모든 것들은 하루아침에 명분을 잃고 추종자들의 갈 길에 난맥상을 제공한 상식이 안 통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러 버린 자가 교회 자랑하고 방송에서 설치며 그 잘난 척했던 목사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지에 좋은 예표를 제시해준 명확한 사안으로 믿는 자 모두는 주위와 현재를 돌아보거나 두리번거리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믿음과 자세를 곤고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열린 축복임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진정 지속적인 간구의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신 육체의 모든 뼈를 불사르며 자신을 향하신 소망 안에 거하며 예수님, 제가 주님의 임재를 굶주린 자의 심령이 되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뜨거운 성령의 임재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임재만이 자신과 가족을 붙잡아 주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으로 우리교회, 우리 목사님하며.. 날 뛸 것이 아니라, 황량한 유대 광야를 홀로 방황하며 울부짖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이런 시대적 상황이라면, 온 목사님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쓴 채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고정하고 애곡하며 울부짖어도 시원치 않는 상황일진데, 자신의 입장과 뒷일만 생각하고 대항은커녕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버리는 꼴로 흑암의 환난 시대에 일어날 일은 생각하기도 싫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애곡을 위한 굵은 베옷은 모양이 독특하므로 성경에는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창 37:34),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왕상 20:31),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왕상 21:27), 굵은 베를 띠고(삼하 3:31), 굵은 베로 띠를 띠고(겔 27:31), 굵은 베를 입고(왕하 6:30), 굵은 베 옷을 입고(느 9:1), 굵은 베를 두르고(왕하 19:1), 굵은 베를 감고(렘 49:3), 굵은 베를 펴고(삼하 21:10), 굵은 베로 덮고(사 50:3) 등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성경에 39번 나오는 “굵은 베옷”을 가장 먼저 두른 사람은 요셉을 잃어버린 야곱이었으며(창 37:34), 그리고 마지막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으로 그 중간에는 다윗, 히스기야, 모르드개, 욥, 니느웨 백성 등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굵은 베옷을 걸쳤습니다. “굵은 베옷”은 한국적인 삼베옷이 아니라, 거칠고 억센 천으로 만든 가방같이 통으로 짠 옷을 말하며, 어두운 색깔의 염소털이나, 약대(낙타) 털로 만들어진 옷으로 흔히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베옷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정신적인 고통의 상징, 나라의 재난을 슬퍼하는 슬픔의 상징 또는 통회와 겸허의 상징으로 입었습니다. 국가 위기 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가축, 동거인 일꾼, 노예까지도 모두 베옷을 걸쳤으며, 예레미야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하며, 예수님은 자신의 기적을 보고 회개하지 않는 성읍을 향해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언자들은 자주 베옷을 입었고, 예언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과 그로 인하여 나타나게 될 멸망의 끔찍한 예언 앞에서 낙담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살리실 것인지 죽이실 것인지에 대한 결정(처분)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하지 않는 아주 독특한 의상을 별도로 만들어서 “하나님, 제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습니까? 제발 좀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라는 그 애절한 마음을 표현함에 주요 요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자 모두는 세상을 바라보며 인간들을 의지하며 뭔가?를 해결하려했는지 하나님께 매달리며 하나님 뜻을 간구하며, 머리에 재나 흙을 뿌리고 그 위에 누워 자신은 땅의 흙에서 나온 비천한 존재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더욱 세상이 악하여지고 선악 분별이 아니 되며, 무정부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교리와 성경적 이론을 파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으로 말씀에 자신의 생각과 삶적 경험을 버무려 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 도다.”(나 1:6) 하시고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므로 믿는 자 우리 모두는 주위의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주님께 피하고 우리의 피난처이신 지존자의 그늘, 전능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겉만 뻔지르한 아는 척하는 모양새는 경계하며 눈을 감아버리고,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과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 주시기를 간절히 원해야 할 것입니다. 점점 더 어두워가는 오늘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충만케 하옵시고, 성령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의 영, 우리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며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과 경배와 기도로 진정 기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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