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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r 02. 2024

다 함께 차차차..

6.25동란 이후 폐허되어 처참하며, 절망적인 분위기의 눈앞에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사라지는 허무함과 비참함으로 삶의 의미에 혼란함이 팽배한 틈에 사교댄스의 춤바람이 성행하고, 1954년 황정자의 화무는 십일홍이오~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차차차 좋구나 차차차~~ “노래하라 차차차”가 나와 히트하였습니다. 저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같이 뛰놀던 또래 남자아이의 부모가 함께 카바레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 또래의 집에 가끔 들리면, 그 아이가 고구마 삶은 것을 점심으로 챙겨 먹는 것을 보며.. 어린 저였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하며 지금도 생생히 살아남아 전해집니다. 차차차는 룸바와 맘보에서 파생한 라틴 아메리카 계열의 스텝을 밟아가며 돌리고 흔드는 서양 춤으로 차차라는 명칭은, 많은 스텝에 포함되어 있는 샷세시 두 발의 구르는 소리가 의성화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차차차는 함께 추는 상대와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춤 못 추는 저는 그동안 차차차 하면 잘 흔들고 잘 돌아가는 춤을 바라보며, 차차차는 자기들끼리 잘 논다와 춤 자체에 몰입되어 다른 것들은 생각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지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 따로 잘 놀면 그 자체로 “차차차~ 다 함께 차차차”라는 잘못된 인식을 지니게 되었는데, 하여튼 각각 짝을 지어 돌아가며 잘 논다고 하는 것 같은 요즘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벌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며.. 같은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어버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교육 황폐화, 이념적 혼란, 인구감소, 부정부패(선거), 병든 민주주의, 포퓰리즘, 페미, 좌경화, 성문란 등등은 각기들 기가 살아 차차차 하며 스텝을 맞추고 다 함께 차차차 한다는 표현은 너무나 적절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탄의 전략에 가까운 것들로 육체나 상황적 환란을 넘어 영적인 환란을 자초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기반을 이루는 것들로 이 시대가 지나가 전에 다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 아닐까? 합니다. 바르고 옳고 좋은 것들로 기반을 이루어도 그에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족속은 어느 시대에나 있겠지만, 나쁘고 안 좋으며 해로운 것들로 판을 깔고 온 몸으로 범벅을 뒤집어쓴다는 것은 그 누구하나.. 삼척동자라도 좋은 것은 아님을 바로 알아챔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임에도 진정 구별되어 옳음을 외치며, 아님에 앞장서야할 교계의 앞잽이(앞에서 인도하는 사람)들은 목청 따인 개가 되어 짖지도 못하니, 암담하기 짝이 없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런다 하겠지만, 상황별로 눈 맞아 차차차 해버리니 막을 도리도 없고, 아니라 하면 이단/삼단이라는 족쇄로 입을 틀어 막아버리고자 땡벌들이 되어버리니.. 평범한 자로서는 대책 자체를 입에서 꺼낼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그러하므로 나도 그리하여야 하며, 남을 인정하고 인정에 따르는 행동거지를 바로 하고자함에도 속에서 치받아져 오르는 거룩한 분노는 어찌할 수 없지만, 어찌할 수 없으므로 오직 기도로 주님께 꼬질르며,.. 은혜주시길 바랄뿐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의 시간이 지나고 차아 오르기를 기다림에는 마지막 때 한민족의 사명에 관한 부분을 주셨고, 에덴으로부터 계시록 끝까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는 분명하며 확실한 실상과 보이는 증거들로 이끄시고 계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이루심의 중심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보호하사 왕의 대로로 오실 주님의 오시는 길을 건설하고 닦아 나갈 수 있는 은혜주심에 또한 감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유대-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믿음의 반성경적인 길인 “먼저 배교(기존의 입장에서 떨어져 나가는)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성경은 주님 재림 이전에 먼저 큰 배교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다양한 곳에서 우리의 문명이 저돌적으로 내리막을 달리며,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 배교와 반역을 저지르지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행한 일이 문제이며 분수령이자 경고의 신호로 획기적인 사건으로 보이지 않던 말씀의 증거가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마지막 때까지 영향을 미칠 교황이 카톨릭 교회는 약 2천년의 시간 동안 중대 죄(기독교의 표준)를 지정된 동성 간의 결합을 축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며,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심각한 타락.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정되거나 축복할 수 없는 것으로 한방에 줄줄이 알사탕으로 보내 버리는 심각성을 지니며, 이로 우리는 하나님의 타임라인을 새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하며 확실한 실상과 보이는 증거들로 이끄시고 계심이 저는 크게 교회 내에서만 일어나는 줄로만 생각했던 부분이 저의 생각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초자연적인 역사와 증거는 전 세계적으로 곳곳에서 분출되며,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나타내고 계십니다.       


저 자신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요즘 들어 새롭게 각성되어 넓고 포괄적인 믿음의 사실들을 알아가며, 이단/삼단들은 성경적 용어의 선택 선점을 참으로 잘한다는 것으로 영계가 열려 있어 주님이 하실 일을 먼저 눈치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데.. 깊이 침잠하면 할수록 말씀(성경)의 키(중심)가 되는 것들을 하여튼 잘 가져다 쓴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다른 하나는 가정과 공동체와 나라를 향한 물결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이루어짐과 별을 보고 유대까지 그 시대에 1,000Km(부산 왕복)가 넘는 거리를 예수 탄생 사실을 알고 유대 땅까지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황, 물약을 드린 성경(마 2:2)의 동방박사와 같은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하여 별들의 움직임을 따라.. 그 시대 그먼 유대 땅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이 찾아옴에 대한, 오직 성경에 구색을 갖추기 위함이 아닌, 빛을 따르는 여정에 있어 동방박사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닌, 이교도들로 이교 점성술가들 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시 148:3) 피조물인 무엇을 가지고 점을 치는 것이나, 숭배하는 것을 금하며.. 별들도 해와 달도 하나님 창조주를 찬양해야할 존재임에도 피조물인 별을 통하여 점을 치며 탄생 사실을 알림을 알아채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에 대해서도 열린 구도자들이었고, 그래서 예수님께로 인도 되었으며.. 그들은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찾아온 자들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꿈으로 말씀하셨고, 그들은 받은 그 말씀을 따라야 했다고 기록합니다. 100배의 영광의 시대를 기대하며, 제가 그동안 생각하고 알았던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인 실제적인 물리적 세계에 은혜를 주시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마지막 은혜의 강물을 이루는 시점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부르심, 이끄심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감지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깜짝 깜짝 놀라는 부분은 제가 생각했던 국한된 것들이 아닌, 너무나 이례적이어서 우리 믿는 자 모두는 이러한 종류의 은혜에 대한 기준 틀이 없을 수도 있으므로 은혜를 무섭다.. 이상타~ 하지 마시고 은혜의 물결을 나이스하고 유연하게 파도 타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못 품을 자 없이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고, 하나님과 그 분의 뜻으로 인도하여야 할 것으로 그의 나라와 그 뜻에 관한 확고함으로 사랑의 유연한 서핑으로 주님께 잘 한다~ 보기 좋다하심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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