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학거사 Apr 04. 2024

믿음의 리터러시

믿음에 관한 자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믿음의 리터러시를 통하여 필수적으로 믿음의 질과 결을 높여야 할 것으로 믿음의 리터러시 능력의 한계를 이룬다면, 자신의 믿음의 진정성은 매우 부족할 수밖에는 없음을 늦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에 알고 들었던 설교나 예화로 믿음을 이루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으로 물론 경험과 직감, 기도와 은혜를 통한 계시나 영적 성장은 무척 중요한 요소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종교) 생활 바탕의 리터러시는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리터러시(Literacy)는 문해력이라 표현하며 문자로 된 기록을 읽고, 거기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과 미디어에 관한 리터러시는 디지털과 미디어를 비판적 입장에서 그 메시지를 해석하는 능력을 지칭하며,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정보를 찾고 평가하며 효과적으로 지식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삶의 전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을 위해 효과적으로 그들의 속성을 이해하고 활용 및 적용을 위하여 그 속성 값을 변환하여 결과적으로 실행 가능한 지식과 능력으로 전환 가능케 하는 욕구와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어가며, 과연 내가 믿는 믿음이 최선이 되어야함에 따르는 신뢰성 검증은 절대적으로 학문적인 실전적 예측 모델링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정리해 보면, 정형 데이터만이 아닌 비정형 데이터까지를 아우르는 복잡하고 정교한 고급 분석의 모델링이나 알고리즘을 필요로 함에도 믿음의 과정은 너무나 단순하고 낮은 레벨입니다. 성경적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는 전무하며 오직 제시적 일방통행적 입장이며, 살아계시므로 이루어야 하는 탐색적 자료 분석은 눈 씻고 찾아 볼 수도 없고, 비유로 이루어진 말씀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동질의 정적 추론적인 가설 검증 자체도 없음은 절대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본 제시의 기본적 바탕은 빅데이터 중심의 데이터 리터러시/분석/사이언스를 활용하여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함에 있어서의 논리로 밝히는 것으로 목회활동 자체가 엔지니어적 입장은 절대 될 수가 없으므로 단언컨대 시대적 입장에서의 개념적 상호작용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터인데, 성경적 데이터 셋의 이해는커녕 들음에서 난다는 믿음에 관한 성숙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말씀 자체의 원유를 자동차에 쏟아 붓는다고 차가 쌩쌩 달리지는 못함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AI 기반 목회자 로봇이 나올 것이라는 대목은 현재까지의 기본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믿음은 문자화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영성이 바탕이 되어야 함에 따라 일부 영역의 돕는 써포터 역할만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말미의 시대적 상황은 초미세 반도체는 나노 입자의 양자점을 이루고 기존 컴퓨터가 0과 1만 구분할 수 있는 반면,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킬 수 있음에 따르는 양자 컴퓨팅은 컴퓨터과학, 물리학, 수학의 여러 측면에서 양자역학을 활용해 이론적으로 현존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수백 년이 걸려도 풀기 힘든 문제도 단 몇 초 이내의 어마어마한 속도로 빠르게 풀 수 있는 시기임을 염두에 두고 믿음을 지속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지인데, 일요일 50분 예배 설교로 믿음의 모든 것을 퉁치는 것은 뭘(?) 몰라도 진정 모른다 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음에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감히 잘나서가 아니라, 많이 안다고 함이 아니라.. 같은 믿는 자로서의 충심어림의 발로로 성령님으로 제 자신이 없어진 저는 주님 오시기전에 모두 잘 준비하여 상 주신다 하심에 상도 타고, 요단강 건너가 저 천국에서 함께 상급을 누려보자고 애끓는 심정으로 전하며, 이는 저도 가장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이나 요나의 심정으로 싫어도 끄적거립니다.


기반적 믿음의 리터러시와 더불어 믿음의 성장 저해요인으로 필터버블(필터링된 정보로 버블 안에 가두는)과 확증편향(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은 사탄마귀들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편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 곳곳에서 발견됨을 이루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내에 팽배하며 기조를 이루므로 그 곳의 정서와 문화로 인식될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종교적 입장에서는 매우 무서운 독소적 요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앞 장에 제시한 믿음의 리터러시적 입장의 스탠스를 취하며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통하여 그 자체가 믿음의 정설인 것처럼 믿게 되므로 스스로 도취되고 환상으로 바른 믿음을 향한 비판적 시각과 합리적 판단을 지니지 못하고 하지 못함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감정의 독재를 이루는 확증편향에서 성경에서의 문자적 의미의 구도나 틀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대적으로 돌변해 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듣고 익숙한 것들의 확증이지 살아계시며 무소부재에 따른 새로운 역사나 계시의 사고·관점·해석은 아니라는 측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넘어 상대할 수 없는 인간과 이단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따라서 성경적 타임라인에 따르는 시대적 상황을 기반으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저 익숙하고 유사한 쪽으로 이해함도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가 때이며, 이러든지 저러든지 바름은 바름이고 옳음은 옳음 속에 그동안 받은 많은 자료를 통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두 가지로 구원도 다양한 구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강도의 값싼 구원은 상급과 집을 논하기보다는 부끄러운 수치를 이룬다는 것과 마빈포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간증은 성경에는 없지만, 성경적 기반을 바탕으로 은혜로 체험한 것이니, 확증편향으로 아니라 하지마시고, 들을 귀가 열린 분들에게 나누어 보는데, 목회의 실패에서 오는 좌절과 과로로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심장마비로 51세에 숨을 거두고 주님의 은혜로 체험한 천국의 생생한 모습과 예수님 재림 전 강한 영적 부흥에 관한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들어 아는 부분은 제하고, 천국에서는 각 사람의 영적 성숙(진보)에 따라 어떤 사람은 희고 빛난 옷을 입은 것 같으며, 또한 동시에 여러 가지 빛깔의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천국의 천성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밝게 빛나며, 그들의 영광이 옷을 입은 것처럼 찬란함으로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쳐다볼 수가 없다고 하며, 하층에 속한 영들이 윗층을 방문할 수는 있으나 그들이 보다 큰 영광의 광채 앞에 설 수 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를 갖추거나 얼굴을 가려야 했는데, 아마도 상급과도 관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라고 하신 부분에 집중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니고 있는 자료의 부스러기 값싼 구원을 얻은 자들에 대한 내용에는 마지막 시대라는 표현이 나오고, 거듭난 성화되지 못한 결과와 인내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결과로 거룩한 유리 성막으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적으로 유명세와 호화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감이 주님의 은혜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왕의 대로로 오실 만왕의 왕께서 오실 시간이 진정 가까워 옴으로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함은 당연함을 이룰 것입니다. 꼭 한 가지 더 제시하고 싶은 것은 대형 교회 중에서 중직들이 교회 돈과 결부되어 사단이 난 경우에는 그 손의 피 값을 꼭 물으실 것으로 주도가 아닌 소속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한 모둠적 후폭풍은 피해갈 길이 없다는 것을 감히 알려 드립니다. 끝으로 저는 천하보다 귀한 영들을 향한 충심어림의 발로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으로 전달해보는 입장을 견지함을 밝히고 싶을 따름입니다. 샬롬~

작가의 이전글 피동성과 폐쇄성에 따르는 저해요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