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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28. 2024

접시 물을 이루는..

속담에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죽고, 나무 잘 오르는 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하였는데, 이는 좋아하고 잘하며 익숙한 것을 즐기다가 그렇게 된다는.. 도리어 화를 자초한다는 것으로 현재의 상태를 자만하다 되레 재앙을 당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물에 빠저(빠져) 죽울(-을) 운수라 카머(고 하면) 접시 물에도 빠저(빠져) 죽는다캄더(고 합니다).”라는 표현도 있는데.. 접시 물에 코를 박게 될 수도 있고, 그 접시 물에도 코 박고 빠져 죽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로 평상시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가정할 때 쓰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를 아주 얕은 물의 의미적 표현인 접시 물을 현대 교회의 상황적 기반으로 전개해 보면.. 그 얕은 물에 함몰되어, 분명 의지적으로 일어서면 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대로 그 자체가 너무 좋고 그리하면 은혜 받거나 축복에 이룰 것이라는 착각으로 그로 화를 당함에 생각을 돌이켜 보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응적 진단은 설교를 수없이 듣고, 직분을 지녀 봉사도 줄창나게 해대지만, 마지막 때에 대한 긴장감도 없고, 사명과 소명에 대한 결단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며.. 삶에서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음은 그 증거적 요인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 하실 일이므로 판단 정죄하며.. 굳이 출석 교인을 Ɵ의 자녀가 아니라 할 것은 아니지만, 성령 충만에 따르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이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얻을 때만, 가능한 것이므로 그에 따르는 강력한 감동에 따른 권능의 나타남 없음 또한 그에 대한 반증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성도를 완전히 지배하시는 상태와 Ɵ의 신에 온전히 감동되어 삶 전체가 전적으로 Ɵ의 지도 아래 있게 된 상태라고 지식백과에 정의되어 있으며, 성령 충만한 자는 그 삶이 자신의 옛 본성(자아)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Ɵ과 그분의 뜻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 풀이합니다. 중요하다 못해 절대적인 성령을 글자로 알기는 하지만, 그 속성인 성령의 임재, 감화와 감동, 성령의 인도와 강권적 역사가 한 인격체 위에 충만해야 됨은 성령을 통해 지혜로운 자가 되어 주님의 뜻을 이해하며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로마서 8장은 Ɵ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시므로... 성령이 아니면 Ɵ께 나아가지도 못했고,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라 정확히 제시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현상”이 아닌 “열매”로 나타나며, “경험론적 성령 사역”을 주의하라 가르치는데.. 실제적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진정한 회개, 성령 충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과 더불어 성령님께서 환경, 사람, 생각, 음성, 꿈 등으로 인도하심을 받아본 자들은 현대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아주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경험치 못함에 따른 접시 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믿는 자들이 원하지만, 언감생심인 성령의 은사는 성령 충만함을 입은 상태에서 나타나며 성령과 함께 하나 되어야 하고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므로 순종해야하며, 그 순종을 시험하시고 훈련을 위해 연단하시는 풀무불 도가니에서 정련되어야 하므로 성령의 사람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이라 함은 자기 부인의 상태를 이루며, 성령의 임재와 인도가 함께 강권적으로 일어날 때를 말하며, 인위적 성령 충만은 자신의 느낌일 경우가 될 수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성령의 열매는 교회 댕긴다고 맺게 되는 것이 아닌, 삶 전체에서 시험과 훈련, 연단을 통해 익어지며 맺어지게 되는 것으로 주님을 닮아가므로 새롭게 회복되는..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열매가 장성한 분량만큼 맺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로 통제가 안되는 상태에서 은사가 표출되며, 역사가 일어남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에 대한 이해와 강권적 역사에 관한 경험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부분과 왜? 은혜시대를 넘어 마지막 때를 이루는 시점에서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통한 “늦은 비 성령”을 받아야함은 “영적 대추수”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신과 가족이 천국에 함께 가고 싶고, 현실적인 인간 세상에서 은혜와 축복을 담뿍 받으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성령의 영”에 대해 알아야 하지만, “사탄마귀의 영”에 대하여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나, 현대 교회 어디에도 지옥에 대한 설교와 더불어 사탄마귀에 대한 내용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도 스스로 믿는 자라 한다면 빨리 종교적 망상에서 깨어나야 할 생각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현대 교회를 사탄마귀가 없는 깨끗한 곳이라 생각하신다면.. 말씀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 보시기 바라며.. 실전적으로 “사탄마귀의 영”의 능력과 파워는 믿는 자들의 어벙함의 몇 차원을 넘어 메가 파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사탄마귀의 공격 그 어떠한 것이라도 받지 않아 스스로 은혜 받은 자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접시 물의 환경을 이룰 것으로 언젠가는 그 얕은 물에 스스로 머리 처박아 숨 못 쉬고 헐떡거리며 버둥댈 날이 오게 됨은 자신은 분명 “좁은 길”로 가고 있지 않음의 표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있어.. 몸은 상하게 할지언정 영혼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세력을 무서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살리시는 Ɵ만을 경외하며 성령 충만하여야함은 성령으로부터 신성한 총명과 말씀에 관한 깊은 지혜와 이해, 새로운 세상에서의 아이디어와 창의적 기반은 절대적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이는 오늘날 세상이 이전에 가본 적 없고, 상상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곳으로 빠르게 치달아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이 도래될 것이므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 같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이고, 그들이 살았던 그 당시에 모든 마술사와 박수, 점치는 자보다 10배나 더 큰 지혜로 그들에게 기름부음 부어주셨고, 다니엘은 특별히 모든 꿈과 이상, 영의 영역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초자연적인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Ɵ께서는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라도 현대 교회 안에 갈급한 많은 믿는 자들에게 신성한 총명과 지혜를 주실 것이므로 믿는 자 모두는 성령 충만함으로 그 은혜를 받아내는 자들이 되어야할 것으로 Ɵ께서는 이전에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시고자 하심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으므로 오늘날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니엘의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처럼 황금 앞에 절하지 않고 자신들은 초연히 물질 앞에 주눅 들지 말고 자유롭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은 진정한 신앙의 위력으로 다니엘의 친구들은 맹렬한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주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그들을 던진 자들이 불타 죽으므로 이를 보고 느부갓네살은 회개하고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영적 성장의 근원 되신 분과 살아 있는 연결을 맺지 않는다면, 성령을 힘입어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고, 부어주신 성령의 은사를 따라 복음 전파에 온 힘과 능력을 발할 수 없으므로 성령에 대한 바른 정의와 개념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현대 교회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으로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교회 직분과 열심으로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 착각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으로 성령 충만치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기도는 하늘로 상달되지 않고, 중간에서 사탄마귀들에게 탈취됨을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므로 남을 위한 중보기도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성령 충만한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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