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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29. 2024

돌이킬 수 없는...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마지노선”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최저(소)한의 한계선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이 용어는 정치, 경제, 사회, 뉴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되며 어떤 일에 대한 허용 가능한 한계나 수용 수준을 나타냅니다. 원래의 마지노선은 1차 세계 대전 후에, 프랑스가 대 독일 방어선으로 국경에 구축한 요새선으로 국경을 따라 350km에 이르는 길이에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성채로 만들어진 것으로 돌로 쌓여있어 다른 성벽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5천 개가 넘는 포대와 수천 개의 벙커가 마지노선 내에 배치되어 독일군의 강력한 원거리 공격에도 저항할 수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지노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프랑스를 침투했으며 이는 전략적으로 큰 실패를 이루었고, 따라서 독일군에 항복하게 된 후 이 방어선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므로 마지노선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한계를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오늘날 마지노선 뜻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한계를 의미하며 현대사회에서 종종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쓰였던 이 용어는 시간이 흘러 현재의 마지막 수단이나 한계를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아 기업이나 개인의 의사결정에서 마주치는 한계나 극단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사용합니다.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선으로 한마디로 악몽 같은 참호전이 재발되더라도 완벽하게 자국의 병사들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고루한 교리에 집착하여 나타난 어이없는 결과로 이 때문에 마지노선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마지노선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회피하여 승부수를 띄운 독일의 전략 때문에 순식간 무용지물이 되면서, 이처럼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정작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한 역사를 통하여 실제로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요새이나, 뚫릴 수 없다는, 또는 뚫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는 단어와는 달리 막상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하였음에 마지노선은 정작 필요할 때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경우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로서 영적 전투의 마지노선은 어떻게 표현해보는 것이 좋을까? 라는 생각? 을 해보게 되는데, 그보다 먼저 현대 교회 내에는 과연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진정 있기나 한 것인가? 라는 대목을 짚어보지만 그에 대한 뾰족한 그 무엇을 찾을 수 없음에 왜? 라는 의문만 증폭되게 됩니다.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요새로 뚫려서는 절대 아니 되므로 방어가 최고라는 믿음에서 엄청난 건설비를 투여하여 암반을 뚫고 만들어진 요새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되었음을 현대 교회는 교훈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작 필요할 때 제 역할을 다한다면 좋으련만, 대형 건물과 시설이 무슨 소용이며 무수한 떼로 몰려 있다 한들 영험한 사탄마귀들의 우회 전략으로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수많은 믿는 자들을 장골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의 메시지를 희석시켜 천하보다 귀한 영혼 영혼들이 휴거되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환란에 들어가므로 믿었지만 배도할 수밖에 만든 그 책임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성한 믿음을 지닌 성숙한 자들로 책망도 소화해낼 수 있는 장성한 분량만큼 건강하게 성장시켜야함에 MSG 듬뿍 넣어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유지하며 건강한 신앙생활을 통한 영적 성장을 이루도록 하여야함에도 그저 자신들의 체제 유지와 질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희한한 논리로 타협적 신앙생활이 되게 만들어버린 중차대한 역할을 발로 차버린 그 부분을 단지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에 대한 네거티브적 반감이나 반목을 위한 의도는 절대 아닌, 말씀 중심으로 그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며 그로 많은 자들이 제대로된 푯대와 이정표를 통하여 주님께 달려가게 하여야 할 터인데, 거룩의 모양만을 취하게 하는 짝퉁 공작소가 되었음에 짖어댈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전에 없었던 지상에서 그 누구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세상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창조적인 기적들”로 치달아가는 시점에서 믿는 자들의 마지막 보류인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의 Ɵ 창조 역사 속에 자신이 거듭났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올바르게 살고 있다고 믿으며 모든 것을 다 올바로 행하며 자신들은 주님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심어줌에 대한 것을 돌이켜 목청 따인 개처럼 행치 말고 회복시키려는 시늉이라도 내보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역의 타임라인에서 예수님도 모르시는 그 때를 우리도 알 수 없지만, 계시를 받는다 손치더라도 정확한 때는 알 수는 없는 것으로.. 그러나 표적과 징조로 알 수 있는 힌트를 주시므로 믿는 자 우리 모두는 그에 합당한 준비를 선행하여야 할 때임은 맞을 것입니다. 스스로들이 이해하고자 하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하늘의 역사는 하늘의 시간에 맞춰 정확히 제시되고 돌아가므로 무엇보다도 믿는 자들로 주님께 완전히 취한 자, 은혜로 충만하며 주님을 완전히 닮아가며 주님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아 크고 높은 마지노선이 될 것이란 생각은 현실의 예표로 보여주는 사례와 같이 한방에 무용지물이 되고, 효용가치를 상실한 투여된 많은 자원들로 인해 그 나라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상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 믿는 자들의 강력한 마지노선은 오직 주님뿐임을 각성시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로만이 아닌,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눈물로 애통해하며, 가슴을 찢는 회개와 무시로 지은 자범죄를 주님께 아뢰며 고백해 죄사함을 이루어 흠과 점, 티가 없게 해나감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들이 주님께 제대로 인도되어 사랑하게 되므로 닮게 되고 제자 삶을 이루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뜻과 그의 나라에 다 맞추며.. 은혜와 사랑이 충만해져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모든 생각과 관심은 주님과 하늘나라를 향하도록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전심으로 찾고 구하는 자들로 성령 충만에 따르는 열매를 맺으려 하며, 휴거를 놓칠까? 걱정하는 거룩한 근심을 지니도록 하여야 할 것으로 하늘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사 모든 것에서 마지막 스퍼트는 매우 중요한 요소와 전략으로 순간의 방심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됨을 생각하며, 이 마지막 때에 살아 숨 쉬는 자들로 살아있음에 회개하고,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그 누구에 의한 마지노선이 아닌, 스스로의 마지노선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극히 아주 짧은 시간대의 간극으로 강력한 역사와 은혜가 쏟아질 것으로 초집중과 몰입으로 주님 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으로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지러워도 가장 안전한 곳은 주님 품임을 온 감각으로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간증 계시로 적그리스도 정체의 윤곽이 들어나고 환란 때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지만, 아직 인봉을 해제치 않으시므로 정확한 것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 또한 빠른 시간에 명백히 들어날 것입니다. 고집과 사소한 것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절대 아니 되므로 매사 주님을 향한 주바라기들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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