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엔드타임)”을 두려워하며 대비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엔드타임은 단순히 세상의 붕괴가 아니라, 거짓과 불의의 시대가 끝나고 진리와 사랑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심판” 또한 두려움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엔드타임”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완성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날은 멸망의 날이 아니라 회복의 날, 혼돈의 종말이 아니라 새 창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며, 다시는 사망도, 슬픔도, 고통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시키는 세계, 즉 모든 불의와 고통이 사라지고 진리와 정의가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약속된 최종 무대를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 무대를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이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단지 짧은 인생 무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끝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리허설입니다.
아무도 영원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끝나지 않는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삶은 단순히 시작해서 끝나는 선이 아니라, 시작과 이어짐, 즉 영원을 준비하는 여정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심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의 신호, 즉 우리 안의 “작은 법정”입니다. 때로 그 법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진짜 재판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말합니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존중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끝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무의미한 소멸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두 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무조건적인 심판자가 아니라, 공정하고 사랑이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질문 또한 공정할 것입니다. 우리의 종교나 소속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진심을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진리를 찾으려 했는가? 거짓보다 진실을, 어둠보다 빛을 택하려 했는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그분은, 그 길의 끝에서 행함으로 본을 보이셨기에 그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사랑으로 살았는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분은 이 질문을 더욱 진지하게 물으실 것입니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도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잠시 맡겨진 선물입니다. 시간, 재능,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인생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는가?”를 물어보실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의 리허설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진실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리허설의 목적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수했는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이 세상은 단지 잠시의 무대일 뿐이며, 마지막 막이 오를 때, 거짓과 불의의 시대가 끝나고 진리와 사랑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 속에 당신과 사랑하는 가족이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 즉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자체가 이미 진리를 향한 움직임입니다. 작금의 엔드타임 시대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정성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을 향한 리허설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