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기름부음(Anointing)”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예배의 분위기나 형식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며, 그것은 교회의 중심이 “θ의 임재”에서 “인간의 성취”로 옮겨가 버린 데에 그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은 성경 속 상징이 아니라, 믿는 모든 성도에게 실제적이고 필수적인 영적 현실이나,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고 기도하면서도, 기름부음의 본질과 그 깊이를 알지 못해 영적 생명이 약해지고, θ의 뜻을 따라 걷는 길 위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집니다. 진정 기름부음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은 θ의 자녀로서의 본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기름부음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일”을 넘어, θ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을 깨닫고 그 부르심 안에 살아가도록 하는 영적 각성의 사건입니다. 기름부음은 언제나 θ의 주권 아래서 임하나, 인간의 의도와 욕망이 중심이 되면,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멈춥니다. 본래 기름부음은 θ의 영이 사람 안에 임하셔서 그의 삶을 통해 θ의 뜻을 이루게 하는 거룩한 동행의 표징이었지만, 현대 교회는 그 본질을 점점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형식화된 신앙에 있습니다. 믿음이 지식으로만 남고, 예배가 프로그램으로 변하면서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보다는 시간표와 순서가 더 중요해지므로 θ께서 역사하실 공간이 사라진 것입니다.
기름부음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θ의 임재가 실제로 임하여 마음과 삶이 변하는 사건이나, 오늘날의 예배는 생명적 변화의 자리가 되지 못하며 감정적 위로로만 머무는 경우가 많고, 또한 자기중심적 신앙이 기름부음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신앙이 “θ 중심”이 아닌 “나의 유익 중심”으로 기울어지면, 성령의 기름부음은 더 이상 흐를 수 없으며, 자신을 비우고 θ께 전적으로 순복할 때 임합니다. 그러나 현대 신앙은 성공, 축복, 치유 등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우선시하며, 성령의 내적 역사보다 외적 성과를 추구합니다. 예배의 목적이 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설교를 듣고 위로받는 것”으로 바뀌면, θ의 임재는 점점 멀어집니다. 기름부음의 부재는 거룩함의 상실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어 기름부음은 언제나 “거룩히 구별된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고, 죄를 가볍게 여기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신앙은 θ의 영이 머무를 자리를 잃게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화려한 건물과 많은 성도를 채우고 있지만, 정작 θ의 영광이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이 “거룩함의 결핍”으로 기름부음은 단지 능력이 아니라, θ과의 친밀함 속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생명력입니다. 또한 영적 분별력의 약화는 기름부음의 소멸을 가져왔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인간의 감정, 진리와 거짓의 경계를 분별하지 못하면서 교회 안에는 혼합된 신앙이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분위기”와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름부음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기보다 감정적 고양일 때가 많습니다. 진짜 기름부음은 마음을 찔러 회개하게 하고, θ에서 자신을 낮추게 하며,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별력을 잃은 교회는 외형적 성공에 만족하며 내적 생명력을 잃고 있으며, 무엇보다 기도의 부재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기름부음은 기도로 준비된 심령 위에 임하므로 θ의 임재는 간절히 찾는 자에게 주어지지만, 현대 신앙은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 시간을 잃었습니다. 영적 통로가 막히면, 아무리 좋은 설교와 찬양이 있어도 생명력은 흐르지 않으며, 기름부음은 무릎 꿇은 자리에서만 흐릅니다. 결국 오늘날 교회에서 기름부음이 사라진 이유는 θ을 향한 갈망의 결핍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θ을 진정으로 구하지 않고,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는 신앙은 껍데기만 남으므로 기름부음은 단순한 영적 장식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줄입니다. θ이 실제로 함께하심이 느껴지는 교회,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예배, 그 안에서 눈물과 회복이 일어나는 공동체가 다시 회복될 때, 잃어버린 기름부음은 다시 강하게 흐를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사라진 교회는 겉으로는 평안해 보일 수 있으나, 속으로는 메말라 갑니다. 그러나 θ께 진실히 엎드린 한 사람, 한 교회가 다시 임재를 갈망하기 시작하면, 그곳에서부터 불이 붙으므로 기름부음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θ은 지금도 차고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기다리시므로 진정으로 θ을 찾는 자,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는 자에게 다시 부어질 그날을 향해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면 생명의 회복을 이루어 그것이 믿음의 씨앗을 다시 깨우는 거룩한 불꽃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