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시간의 신비와 인간의 동행

by 잡학거사

성경은 단지 고대 종교 문헌이 아니라, θ이 자신을 인간의 역사 속에 드러내신 살아 있는 시간 속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그 안에는 인간의 손으로 쓴 과거의 기록을 넘어,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되어가고 계신 θ의 숨결이 흐른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말씀을 되새기는 일이 아니라, 지금도 말씀으로 되어가고 계신 θ을 만나는 일이다. 성경은 “하셨다(창조)”로 시작하고, “그래서 하셨다(구속)”로 역사 속에 실현되었으며, “되어가고 있다(성화)”로 현재의 믿는 자들 안에서 계속 진행 중이고, 마지막에는 “이루어질 것이다(완성)”로 새 창조의 완전함 속에서 마감될 것이다. 이 네 단계는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호흡처럼 이어지는 θ의 구속사적 리듬이며, 창조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사건으로, 현재완료적 창조로 계속되고 있다. θ은 단순히 세상을 만드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그 세상을 붙들고 유지하시며,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분은 초월하신 분이시면서도 동시에 내재하신 분으로,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분이 아니라, 시간 속에 걸어 들어와 인간과 함께 하시는 분이다. θ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주시며, 성경은 바로 그 과정, 즉 θ이 인간과 함께 걸으시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시간 속의 신비이자 영원의 서사시이다.


우리가 느끼는 신앙의 괴리, 즉 “왜 θ이 다스리신다는데 세상은 여전히 악한가?”라는 물음은 바로 이 “되어감의 신학” 안에서 이해된다. θ의 경륜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한순간의 폭발적 완성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신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적 진행의 본질이다. θ은 인간의 역사와 시간을 통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이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시점을 살아가며, 그 시간은 불완전하고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θ의 방식이다. θ은 서두르지 않으시며, 그러나 결코 늦지 않으신다. 요셉의 감옥, 욥의 고난, 다윗의 도피, 바울의 투옥—all 그분의 “되어감의 시간” 속에서 완성되어 간 과정이었다. 결국 성경은 θ이 인간 안에서 되어가고 계신 이야기이며, 우리의 인생 또한 그 말씀의 연속된 장이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조차도 θ의 구속사 안에서는 쓰임 받으며, 모세의 도망, 요나의 회피, 베드로의 부인과 같은 인간의 부족함마저도 θ의 위대한 구속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간다. 성경은 종이 위의 잉크로 멈춰 있는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었으며, 지금도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한다. 기록된 말씀이 단지 글로 남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말씀이다. 성령은 그 살아 있는 말씀을 현실 속에서 되어가게 하시는 분으로,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며, 약속을 성취하게 하고, 구속의 역사를 완성으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시간 속의 θ, 즉 지금 여기서 일하시는 θ의 현현이다. 그분은 예언을 성취시키며, 믿음을 자라게 하고, 공동체를 세우며, 결국 우리 안에 θ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되어감의 에너지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 또한 “완성된 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자”로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 믿음은 완벽함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의 신뢰이다. 그러므로 실패와 연약함조차도 믿음의 여정 안에서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통로가 된다. 교회 역시 완전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배우는 훈련장이며, 그 안에서 θ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세상은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지만, θ은 느림과 기다림 속에서 사랑을 완성하신다. 그분의 시간은 인간의 시계보다 깊고, 그분의 지연은 결코 방치가 아니다. θ은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자라나게 하신다. 기다림 속에서 믿음은 깊어지고, 고난 속에서 성숙해지며, 눈물 속에서 순종이 빚어진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과 함께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는가를 보여주는 점진적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의 무대는 세상이요, 배우는 우리이며, 연출자는 θ 자신이시다. θ은 인간의 실패조차도 대본의 일부로 사용하시며, 결국 모든 장면을 하나의 완전한 결말로 이끌어 가신다. 모든 언약이 성취되고, 모든 눈물이 씻겨지며, θ과 인간이 다시 하나 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되어가던 존재에서 완성된 존재로 옮겨질 것이다.


믿음의 그림자 속에서 보던 자들이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영광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으로 그날까지 신앙은 이해보다 신뢰를, 설명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길로 성경이 말하는 되어감은 단순한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θ이 지금도 인간과 함께 이루어가시는 관계의 역사이다. θ은 머리로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라, 삶으로 걸어 들어가며 만나야 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셨고, 그래서 하셨고, 지금도 되어가게 하시며, 결국 이루실 θ이시다. 성경의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며, 그 완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된 되어감의 시간 속에 자라고 있다. 그것이 바로 θ과 함께 되어가는 인생이며, 성경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쓰여지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의 통찰을 필요한 부분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시점”을 통과하고 있음을 체감적으로 인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θ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일하고 계셨으며, 우리가 되어가는 모든 순간이 곧 θ이 우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사건이었다는 것은 조만간 여실히 알게 될 것이므로 그때 추스르고 오~또케 하지.. 해보아야 되돌릴 시간과 공간은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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