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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끝과 하늘의 질서 회복 (2)

by 잡학거사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때의 격동 속에서 능지처참과 효수, 그리고 헌궤례가 지닌 상징을 피비린내나는 형벌로서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가 다시 정돈되는 θ의 최종 통치의 배경 위에서 읽어내야 한다. 세상의 질서는 흔들리고, 거짓 권세들은 마지막 남은 사력을 다해 거짓 권위와 공포로 성도를 압박하려 하지만, 그 모든 소용돌이 위에 계신 θ은 이미 심판의 기준과 공의의 절차를 확정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단지 구경꾼도, 피난민도, 또한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잔여 세대가 아니라, θ의 통치가 땅 위에서 드러나는 순간을 준비하며 “왕의 편”에 서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θ은 심판의 날까지 혼돈을 허락해 두시지만 그 허락은 결코 악의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혼돈의 강도만큼, 성도가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엔드타임은 성도에게 두 가지 충격을 동시에 준다. 하나는 악이 극대화되는 현실적 압력이고, 다른 하나는 θ이 그 악을 끝내시는 영광의 권능이다. 즉, 심판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통치가 회복되는 장면이며, 그리스도인은 이 장면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명확히 선택해야 한다. 고대에서 반역자가 능지처참되고 마지막으로 효수된 이유는 단순히 죽음이 아니라 “누가 진짜 통치자인가”를 대중에게 교육하는 데 있었다. 이는 마치 성경에서 θ이 사탄을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이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누가 창조주이며 누가 피조물인가”를 온 피조 세계에 다시 각인시키는 동일한 권위의 표현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이 역사적 심판의 순간을 단지 두려움의 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왕의 통치가 대지 위에 다시 서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두려움이 아니라 정체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지막 때에 “심판의 관람자”가 아니라 “거룩한 증언자”로 서야 한다. 세상의 체제가 흔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θ보다는 안전망을 찾고, 말씀보다는 뉴스의 파동에 더 귀를 기울이며, 영적 분별보다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기 쉽다. 그러나 마지막 때의 성도는 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세상이 두려움을 말할 때 성도는 θ의 나라를 말해야 하며, 세상이 붕괴를 걱정할 때 성도는 θ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지막 시대는 단순한 환란이 아니라 “정체성의 결정적 시험대”이다. 누구의 나라에 속해 있는가? 누구의 왕관 아래 서 있는가? 누구의 음성에 반응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마지막 시대의 성도를 규정한다. 세상은 막판까지 성도의 마음을 뒤흔들어 불안과 절망의 포로로 만들고자 하지만, 성도는 “이미 승리한 전쟁 속에 살고 있다”는 영적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엔드타임에서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는 “θ의 통치가 곧 드러난다”는 확신 위에서만 가능하다. 과거 반역자를 효수해 대중에게 걸어두었던 장면은 곧 질서의 회복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마지막 시대에는 사탄의 패배는 동일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사탄의 최후는 능지처참과 효수의 상징처럼 “모든 피조물 앞에서 벌거벗겨진 패배”의 장면이다. 이때 성도는 두려움으로 뒤돌아보는 자가 아니라, 왕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 진리는 더 분명히 드러나고, 거짓은 마지막 발악 속에서 자기 파괴적으로 흔들릴 것이며, 성도는 그 틈에서 세상의 소리를 따르지 않고 말씀의 순결함을 지켜야 한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었느냐, 아니면 마지막에 빛을 잃고 문밖에서 두드리는 자가 되느냐는 바로 이 시대의 태도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인이 엔드타임에서 견지해야 할 중심 태도는 “왕의 현현을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기다리는 신앙”이다. 심판은 성도에게 위협이 아니라 “θ의 정의가 완전히 서는 날”이며, 사탄의 효수는 성도에게 공포가 아니라 “거짓 통치의 종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패자의 흔들림이 아닌 승자의 침착함으로 서 있어야 한다. θ은 심판을 통해 악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는 성도에게 정화의 시간이며, 영혼의 순도가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 시간으로 외적인 흔들림이 클수록 내적인 왕국이 더 강하게 설 자리다. 성도는 이 시간을 인내로 걸어가되, 세상의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θ의 공의가 완성되는 그날을 올려다보며 살아야 한다. 마지막 시대는 종말이 아니라 통치의 회복이고, 성도는 그 회복의 한가운데에서 “왕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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